- 43년째 동네 목욕탕 운영 서울 계동 담란향 씨
[이브닝신문/OSEN=김미경 기자] 쉽게 부수고 쉽게 세운다. 대한민국에서 세월이 내려앉은 동네를 보기 힘든 이유다.
안국역 3번 출구를 나와 북촌문화센터를 지나면 서울 종로구 계동 북촌마을 한가운데 1968년 문을 연 목욕탕이 자리한다. 그이름도 ‘중앙탕’이다.

최근엔 집집마다 욕실이 워낙 잘 갖춰져 있고 대형 찜질방에 자리를 내 줘 동네 목욕탕들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계동 중앙탕은 40년이 넘도록 동네주민들의 사랑방 노릇을 하고 있다.
목욕탕 입구에 들어서면 1평도 채 안되는 카운터가 보인다. 좌측은 여탕, 좁은 계단 위로 올라가면 남탕이 나온다. 탈의실 옷장이 시대요구에 따라 옷을 바꿔입은 것만도 네 번, 목욕탕 내부로 들어가면 누렇게 변색된 하늘색 타일이 눈에 띈다. ‘물을 아껴 씁시다!’라는 푯말도 빛바랜 모습 그대로다.
여주인 담란향(67)씨는 “불과 몇 십년전만 해도 손님이 많아 살끼리 서로 부딪히면서 목욕하고 그랬어요? 명절 때 애들하고 목욕탕 오는 재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죠”라고 입을 열었다.
손님은 많아야 평일 20~30명. 요즘처럼 기름 값이 오를 때면 유지비가 곱절 든다.
“수지타산 따지며 돈 벌 생각이면 벌써 문 닫았겠죠. 목욕탕은 격식과 체면을 벗어던지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서민적인 공간이 아니겠어요. 이웃 간 정으로 이곳을 지킵니다.”
담씨는 27세의 젊은 나이에 목욕탕을 시작해 서른여덟에 남편과 사별, ‘때 돈’을 벌어 아들 셋, 딸 둘을 혼자키웠다.
관리인 박희원(63‧남)씨도 79년부터 목욕탕을 함께 꾸려온 터주대감. 그에 따르면 80년대까지만 해도 하루에 100여명 이상 손님이 왔다. 설날, 추석과 같은 명절이면 300명이 넘는 손님이 몰려 물이 바닥난 적도 있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이때 목욕탕을 가는 건 빼먹지 말아야할 주기적 행사였던 셈이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들어선 24시간 대형 목욕탕과 찜질방이 생기면서 손님이 많이 줄었다. 주변 목욕탕은 문을 닫은 지 오래다.
400환으로 시작했던 목욕비는 지난해 40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랐다. 그래도 1000원 덜 받는 금액이다. 목욕하러 온 손님들 대부분이 목욕비는 좀 올려도 되니 이 탕은 없애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니 이곳을 역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 싶다. 화려한 옥돌이나 신식 욕탕기구 하나 없지만 중앙탕에는 오래된 추억과 정(情)이 남아 있다.
kmk@ieve.kr /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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