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민의 베이스볼 다이어리]9구단 승인발표 전 2가지 복선
OSEN 박광민 기자
발행 2011.02.09 07: 16

소설을 읽다 보면 가끔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복선이 깔립니다. 예를 들어 6·25 전쟁 중에서 일어난 한 가정의 비극적 상황과 그 극복 과정을 그린 소설 윤흥길 <장마>에서는 구렁이 우는 소리가 삼촌이 구렁이가 되어 나타날 것을 암시하거나, 장명등이 꺼지면서 삼촌의 죽음을 예상합니다. 황순원 <소나기>에서 소녀가 "난 보랏빛이 좋아"라고 말을 하는데 보랏빛은 죽음을 상징하죠.
얼마 전 인기리에 끝난 드라마 <시크릿 가든>은 거의 최종회 순간까지 결론을 알지 못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습니다. 저 역시도 드라마 속 하지원과 현빈의 결론을 놓고 오랜만에 드라마에 몰입했습니다. 몇몇 눈치 빠른 시청자들은 해피앤딩을 직감했다고들 하는데 저는 김은숙 작가님이 남편에게서 받은 문자 "주원이 죽는거야? 죽이기만 해봐 이혼할꺼야!!ㅋㅋ"를 트위터에 올리셔서 "아, 이혼은 안 하실테니 해피엔딩이겠구나"라는 이상한 추측을 해봤습니다.
엔씨소프트가 8일 오전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열린 8구단 사장단 이사회에서 장병수 롯데 자이언츠 사장의 강한 반대 의사표현에도 불구하고 신생 구단 창단 기준을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두 가지 복선이 있었습니다.

일단 회의는 9시를 조금 넘겨 시작됐습니다. 지난달 1차 이사회 역시 9시에 시작해 오후 1시 40분이 지난 시점에서 '유보' 발표가 난 것에 비해 2차 이사회는 1시간 50여분이 지난 오전 10시 50분에 결론이 났습니다.
첫 번째 힌트는 장병수 롯데 사장의 이른 퇴장이었습니다. KBO 관계자는 "장병수 사장이 회의가 끝난 직후 자리를 떴다"고 말했습니다. 정확한 시점은 모릅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느낀 분위기는 다른 사장단과 함께 나가는 것이 아니라 혼자만 회의장을 빠져 나갔다는 점은 기자들로 하여금 한번쯤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엔씨소프트 창단을 놓고 롯데가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면 첫 번째 복선으로 충분하겠죠?
두 번째는 이재성 엔씨소프트 상무가 이사회가 끝난 회의장을 들어갔다는 점입니다. KBO 이사회가 열린 장소는 야구회관 6층 회의실입니다. 이 상무는 11시를 조금 넘어 사장단들이 모두 나간 뒤 KBO 관계자들이 남은 회의장에 들어갔습니다. 왜 이사회 결과 발표 보도문을 만드는 KBO 직원들이 있는 회의장에 들어갔을까요? 지난달 8일 있은 1차 이사회가 끝난 뒤 이재성 상무는 회의장에서 KBO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기에 이 역시 특이한 증거가 됐습니다.
20여분이 더 지난 11시 20분. 이상일 KBO 사무총장은 2장의 보도문을 배포하면서 이사회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사무총장은 "롯데의 반대가 있었지만 나머지 구단들이 KBO 총재에게 일임해 엔씨소프트를 우선 협상 대상자로 지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짧은 시간 속 두 가지 작은 일이, '창단, 거절, 그리고 보류' 3가지 상황을 그려 놓고 기사를 준비하던 제 기사창의 제목을 '창단' 으로 확정짓는데 도움이 됐답니다.
엔씨소프트의 제9구단 입성을 축하합니다. 롯데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더욱더 만발의 준비를 해 경쟁력있는 신생 구단이 되길 바랍니다.
agass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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