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송창식, "야구의 간절함을 느꼈다"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1.02.10 14: 42

한화 윤종화 단장이 사심을 듬뿍 담았다. "개인적으로 정말 잘 됐으면 좋겠어. 우여곡절이 많았잖아". 윤 단장이 말한 그 선수. 바로 8년차 우완 투수 송창식(26)이다. 가수 송창식과 이름이 같아 '가나다라'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그는 남다른 각오로 2011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송창식. 한 때 한화의 특급 유망주였다. 2004년 세광고를 졸업하고 2차 1번으로 지명돼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데뷔 첫 해부터 선발진에 진입하며 8승(7패)을 거뒀다. 그 중에는 완투승도 하나 포함돼 있었다. 당시 마운드 고령화 기미를 보였던 한화에게 송창식의 존재는 단비와 같았다. 향후 한화 마운드 리빌딩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의 야구인생에는 예기치 못한 걸림돌들이 불쑥 불쑥 나타났다. 한창 150km 가까운 강속구를 뿌렸지만 팔꿈치가 아파 칼을 대야 했다. 팔꿈치 재활을 거친 뒤에는 더 무서운 그림자가 그를 덮쳤다. 폐쇄성 동맥 혈관염 이른바 버거씨병이었다. 손에 피가 통하지 않아 점점 차가워지고 감각이 없어지는 무서운 병이었다. 그 때문에 공을 던질 수 없었고, 마운드를 떠나야 했다. 2008년 4월의 일이었다. 그렇게 송창식의 이름은 잊혀지는 듯했다. 그에게 하와이 전지훈련도 2008년이 마지막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야구를 놓지 않았고 야구도 그를 버리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송창식은 야구를 놓지 않았다. 버거씨병으로 팀에서 나왔지만 그가 찾은 곳은 모교 세광고. 이곳에서 투수코치로 일하며 후배들을 도왔다. 1년이 지나자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공을 잡으니 의욕이 치솟았다. 야구를 하기 위해 테스트를 치렀고, 친정팀 한화는 그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게 2010년 4월의 일이다.
2010년 시즌 막판 1군에 올라와 12경기에서 승패없이 평균자책점 4.08을 기록한 송창식은 시즌 종료 뒤 마무리 훈련 때부터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했다. 하와이 스프링캠프에도 3년 만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9일(한국시간)에는 불펜피칭으로 무려 150개 공을 던졌다. 한용덕 투수코치는 "불펜피칭 막판에도 공에 힘이 떨어지지 않았다. 150개를 힘있게 던졌다는 건 그만큼 투구 밸런스가 좋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송창식의 신인 시절 공을 받았던 포수 신경현도 "조금씩 예전 감을 찾아가는 것 같다"고 기대했다.
송창식은 "3년 만에 스프링캠프에 참가하게 돼 감회가 새롭다. 더욱 열심히 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용덕 코치는 "의욕만 앞서 무리하는 것만큼 무식한 건 없다"고 주문했다. 송창식도 "너무 의욕만 앞서 무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잘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하고 싶다"고 했다. 그만큼 야구가 고프다. 그는 "한 번 밖에 나갔다 오니 야구의 간절함이 크게 느껴진다"며 "아직 나이도 젊다. 올해는 어떻게든 1군에 있는 게 목표다. 더 나아가 예전처럼 잘 던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변화구도 새로 연마하고 있다. 송창식은 "예전에는 직구와 슬라이더만 던졌는데 지금은 체인지업과 커브도 추가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직구 스피드가 예전만큼 나오지 않기 때문에 투구 스타일을 바꿀 수밖에 없다. 변화구 추가는 변화의 의미라 할 수 있다.
그런 송창식에게 좋은 롤 모델이 있다. 방장으로 모시고 있는 룸메이트 박정진이다. 송창식의 세광고 9년 선배인 박정진은 데뷔 12년차가 도니 지난해 화려하게 부활했다. 박정진처럼 송창식도 '부활의 가나다라'를 부를 수 있을까. 송창식은 "(박)정진형이 많은 도움을 준다"고 고마워 했다. 지난해 박정진은 서른넷에 부활했다. 송창식의 나이 이제 스물여섯. 곡절을 겪은 나이치곤 창창하다. 미래 또한 희망적이다. 야구의 간절함을 느끼게 한 시련은 그래서 어쩌면 값진 것인지도 모른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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