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필주의 야구 36.5]짚고 넘어가야 할 '10년 전 10억 원'
OSEN 강필주 기자
발행 2011.02.11 07: 27

견강부회? 아전인수? 이현령비현령? 이런 경우는 어떤 고사성어가 맞을까요.
9구단 창단에 박차를 가하려는 엔씨소프트의 선수 수급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엔씨소프트 창단 모델로 쌍방울이 아닌 SK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고심이 많을 것이다"고 운을 뗀 한 구단 사장은 "10년전 SK가 선수 1명에 10억 원을 지불했다. 그러니 물가를 감안하더라도 1명 당 최소 15억 원에서 20억 원이 적정선이 아닐까 싶다"고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습니다. 이어 "엔씨소프트가 선수 수급을 위해서는 돈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며 "각 구단들은 가뜩이나 선수가 없어 2명이나 내주는데 대해 반대하고 있다. 엔씨소프트가 선수를 데려가는데 그만한 비용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는 곧 다음달 8일 열리는 단장회의에서 엔씨소프트 창단에 따른 선수 지원책이 구체화 될 예정이라지만 이미 이사회에서 8개 구단 사장들이 어느 정도 입을 맞춰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 면에서 10년 전 SK가 각 구단에 선수 양보 명목으로 내놓은 10억 원은 그 성격이 다릅니다. 우선 당시 10억 원의 쓰임새입니다.
우선 엔씨소프트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는 바닥부터 시작하는 구단입니다. 이런 완전한 창단은 1985년 빙그레와 1990년 쌍방울 뿐이었습니다. 빙그레가 창단에 따른 혜택이 전무했던데 반해 쌍방울은 상당한 지원을 받았습니다. 2년 동안 신인 1차 우선지명권에 2차 10명 우선지명권을 가졌습니다. 더불어 다른 7개 구단으로부터 보호선수 22명 외 2명씩을 지명할 수 있는 권리까지 얻었습니다. 지금의 8개 구단 체계를 굳히는데 공헌했던 쌍방울은 그 어떤 구단에게도 2명을 데려가는데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2000년 등장한 SK도 역시 완전한 창단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250억 원이라는 막대한 창단 비용을 정한 SK는 선수 수급을 그나마 수월하게 처리했습니다. IMF 사태로 모기업이 부도가 나며 해체된 쌍방울의 선수들을 일부 받았기 때문입니다. 숨통을 튼 SK는 쌍방울에 70억 원을 보상금으로 지불했습니다.
SK는 여기에 각 구단으로부터 1명씩의 선수를 받았습니다. 이에 SK는 각 구단에 그 대가로 10억 원씩을 지불했습니다. 선수 양보 혹은 보상 명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SK도 10억 원을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한 야구관계자는 "안용태 SK 사장이 '창단에 돈이 많이 든다. 그룹에 자꾸 지원을 요청하기가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구단 사장들이 '그러면 SK도 10억 원을 가져가라'고 했다"고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결국 선수 당 10억 원은 '선수 양보' 명목이라고 딱히 정의내릴 수 없게 돼버렸습니다. 이사한 사람이 기존에 살고 있는 이웃들에게 인사 차원에서 돌리는 떡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이 10억 원은 국내 굴지의 재벌 기업들의 통큰 인사법을 상징한다고 봐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다시말해서 SK는 250억 원이 아니라 240억 원을 쓴 것입니다.
 
실제로 SK가 7개 구단으로부터 받은 선수는 김충민(한화), 김태석(롯데), 강병규(두산), 송재익(삼성), 장광호(현대), 권명철(해태), 김종헌(LG) 총 7명이었습니다. 그 어떤 선수도 10억 원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 못했습니다.
 
또 하나는 당시 10억 원은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습니다. 요즘이야 평범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당시 10억 원은 시세를 훌쩍 뛰어넘은 금액이었습니다.
SK가 창단하기 3년전인 1997년 11월 10일 해태 조계현이 현금 4억 원에 삼성으로 트레이드 됐습니다. 이도 잠시 하루 뒤인 11일에는 쌍방울 박경완 한 명이 이근엽과 김형남 두 명에 9억 원을 얹어 현대로 이적했습니다. 그만큼 10억 원은 당시로는 상상하기 힘든 액수였습니다.
또 2000시즌 후 우승한 현대가 조규제와 조웅천을 한꺼번에 보내면서 SK로부터 15억 원을 받았고, 2위 두산이 강혁을 SK에 주는 대신 6억 7500만 원을 받았습니다. SK 창단 지원을 위하는 것이었지만 주축 선수를 받으면서도 한 명당 10억 원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이름값을 따지면 당시 10억 원이 단순한 선수 양보 명목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10년 전 물가와 비교해 15~20억 원을 운운한다는 것은 어쩌면 우스울 수 있습니다. 차라리 창단 구단의 관례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뻔 했습니다. 아예 쌍방울 때처럼 무상으로 지원을 받을 수도 있지만 차라리 5억 원 정도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겠지요.
엔씨소프트 측은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현재로서는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이재성 엔씨소프트 상무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코멘트를 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생각한다"면서도 "규약대로 가야 하지 않겠나. KBO와 8개 구단이 합리적인 결과를 낼 것이라 믿고 갈 수 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흥미를 끄는 것은 이 상무의 다음 멘트였습니다. "그런 금액은 결국 선수를 받았을 때 발생하는 비용이 아닌가"라면서 "우리도 다방면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살짝 덧붙였습니다. 이는 8개 구단이 선수 양보 명목비를 요구할 줄 알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여차 하면 선수를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뜻일 수도 있겠습니다. 뭔가 새로운 방식을 선보이겠다고 공언했던 엔씨소프트였으니까요.
아무튼 이번 9구단 창단 과정을 통해 야구계의 각종 치부가 적나라 하게 드러날 수도 있겠습니다. 단합이 요구되는 시기에 야구계가 다른 면모를 보일지 궁금합니다.
letmeou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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