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스스로 이겨내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원조 코리안 특급' 박찬호(38. 오릭스)가 일본 프로무대에서도 승승장구하기 위해서는 작금의 논란에서 스스로 이겨내야 합니다.
박찬호는 지난 15일 오키나와현 미야코지마 구장서 열린 자체 청백전에 선발로 등판해 올 시즌 첫 실전 등판을 갖고 2이닝 3피안타 무실점 투구를 펼쳤습니다. 세 개의 안타를 내주기는 했습니다만 실점은 하지 않으며 집중타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베테랑의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준 셈입니다.

다만 박찬호는 2회 1사 2루 상황서 아라카네 히사오를 상대로 보크를 범했습니다. 다행히 병살타를 유도하며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쳤으나 주심은 "셋포지션에서 완전한 멈춤 동작을 보여주지 못했다"라는 이유로 박찬호에게 보크를 지적했습니다.
지난 3년 전에도 다니엘 리오스(전 야쿠르트)가 지적받은 것과 거의 똑같습니다. 2005~2007시즌 두산에서 뛰던 시절 리오스는 김성근 SK 감독으로부터도 주자 출루 시 타자에게 준비할 틈 없이 곧바로 투구 동작을 시작한다는 지적을 받았고 일본에서도 그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사실 일본 무대는 적어도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전까지 보크에 대해서 관대한 곳이었습니다. 미우라 다이스케(요코하마)나 사이토 가즈미(소프트뱅크) 등 팀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에이스들은 모두 키킹 시 내려가던 왼 다리를 적어도 한 번 이상 들어올리는 투구폼을 선보였던 바 있네요.
특히 긴테쓰 시절이던 2003, 2004시즌 2년 연속 15승을 올린 우완 이와쿠마 히사시는 당시 '타자 농락'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변칙적인 투구폼을 보여줬습니다. 주자 없을 때 왼 무릎을 정점에서 내려오는 순간 또다시 올리는 동시에 오른손을 글러브에서 빼서 철저히 공을 감춘 뒤 중심이동시키며 공을 뿌렸습니다. 투구 시작이 되는 와인드업도 없던 만큼 타자가 대비할 틈이 보이지 않았던 자세입니다.
일본에도 보크 규제가 본격화된 것은 2004시즌 이후입니다. 당시 대표팀의 주축 투수 중 한 명이 되어야 했던 이와쿠마의 투구폼이 국제 무대 룰에 위배되었고 이후 이와쿠마의 야구 인생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익숙했던 자세를 버리고 새로운 투구폼으로 던지려니 투수에게 이상이 생기는 것도 한 순간이었지요.
긴테쓰의 오릭스 합병 이후 분배 트레이드서 우여곡절 끝에 라쿠텐 유니폼을 입은 이와쿠마는 2005시즌 9승 15패 평균 자책점 4.99에 그친 뒤 2006, 2007시즌 도합 6승을 거두는 데 그쳤습니다.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 등을 받으며 갑작스러운 투구폼 변화에 대한 3년 간의 적응기를 거친 뒤 2008년 21승으로 부활했습니다. 아직 키킹 시 멈춤 동작은 있지만 다시 들어올리는 자세 없이 오승환(삼성), 서재응(KIA)의 경우처럼 무릎이 내려오는 동작으로 바뀌었네요.
이와쿠마 케이스에 비하면 박찬호가 받은 지적은 양호한 편입니다. 이와쿠마처럼 자신에게 익숙한 투구 밸런스를 완전히 뜯어고치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셋포지션서 투구 시작 시점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았다는 점은 일본리그서 외국인 투수를 향해 던진 일종의 견제 수단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성원이 곧바로 비수와 무관심으로 돌변하는 곳이 바로 일본입니다. 자신의 등판 기회가 끝난 후 본인이 스스로 주심을 찾아 어떤 점이 잘못되었는지 묻는 적극적인 대처법을 보여주며 박찬호는 하나의 작은 산을 넘었습니다.
보크 논란은 박찬호를 향해 준비되어 있는 일본 내 견제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결국 그가 새로운 리그에서도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직 살아있는 구위를 확실히 뽐내야 합니다. 아시아 메이저리거 최다승(124승)에 빛나는 박찬호의 오른 어깨가 어떻게 일본 리그의 견제를 이겨낼 지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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