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일본 오키나와에서는 연일 흥미로운 대결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지난 17일 야쿠르트의 스프링캠프지인 우라소에 구장에서 있었습니다. 삼성의 일본인 외국인 투수 카도쿠라(38)가 야쿠르트를 상대로 등판해 관심을 모았습니다.
카도쿠라는 이날 삼성의 5~6선발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정인욱에 이어 등판, 1이닝을 세 타자로 깔끔하게 막아냈습니다. 경기 전에는 살짝 긴장한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경기 후에는 특유의 눈웃음과 여유로운 목소리를 들려줬습니다.
카도쿠라는 통역에게 "야쿠르트 타자들의 방망이가 자신의 스피드에 밀렸다"면서 만족스러워 했습니다. 또 28일 요코하마와의 연습경기 등판이 결정된 상태입니다. 아마 이 때는 선발 출격이 될 것 같습니다.

경기 소감은 여유가 넘쳤습니다.
"실전이라는 느낌보다는 삼성 유니폼을 입고 나선 첫 경기라는 의의가 있다. 막상 던지고 나니 마음이 놓인다. 상대가 아직 준비가 안된 상태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아직 실전 등판은 아니라고 본다".
약간 예민할 수 있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전날(16일) 고치에서 오키나와로 들어온 SK에 대한 느낌을 물었습니다. 전 소속 구단에 대해 말하는 카도쿠라의 표정은 담담했습니다.
"특별한 느낌은 없다. 작년 우승팀인 만큼 삼성이 우승하기 위해 반드시 무너뜨려야 하는 팀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김성근 감독에게는 전화 해봤나'고 묻자, 갑자기 쑥스럽고 겸연쩍은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는 "무서워서 못했다"는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앞서 카도쿠라는 SK 통역 출신으로 현재는 라쿠텐 김병현의 통역을 맡고 있는 김명환씨와는 자주 통화를 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역시 일본어로 대화가 가능한 김 감독에게는 전화하는 것이 두려웠다니 다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김 감독은 카도쿠라를 단순히 외국인 투수 이상으로 대해 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직접 도쿄까지 날아가 영입에 나설 만큼 적극성을 보였습니다. 지난 시즌에는 투구폼을 수정시켜 전성기 못지 않은 스피드를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또 새로운 포크볼 그립까지 알려주며 부활에 힘썼습니다. 그 결과 14승을 올렸습니다. 카도쿠라의 야구선수 출신 아들이 문학구장에서 마음 놓고 훈련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습니다. 시즌 중 지치면 로테이션 간격도 조정했습니다.
하지만 한 관계자의 말을 빌면 카도쿠라가 김 감독에게 연락하지 않은 것은 미움과 미안함이 교차한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SK와 재계약이 틀어지는 과정에서 마음이 상한 카도쿠라였습니다. 스스로 괜찮다는 왼 무릎을 두고 수술 불가피라 내세우는 SK에 상당히 화가 났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나마 다른 팀으로 갈 수 있도록 풀어달라는 요청을 받아준 것은 다행이었습니다.
카도쿠라 입장에서는 인생이 걸린 문제였습니다. 처자식이 있는 카도쿠라였던 만큼 별 이상 없다고 생각했던 왼 무릎이 재계약 불가 이유가 될지 몰랐습니다. 결국 최종 결정은 김성근 감독이 내렸기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반대로 SK와 재계약이 틀어진 후 카도쿠라는 정신 없이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자신의 몸상태가 괜찮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고 입단 테스트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김 감독에게 연락할 기회를 잃었던 것이죠.
결국 이 때문에 카도쿠라가 김 감독에게 전화하는 것에 대해 "무섭다"고 표현한 것은 미안함이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사실 SK 숙소인 카푸리조트와 삼성 숙소 리젠씨 파크는 차로 5분 거리 안에 있을 정도로 가깝습니다.
한편 카도쿠라를 대신한 대만 MVP 매그레인도 이날 니혼햄전에 선발로 나왔습니다. 3이닝을 무실점하면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올렸습니다.
단순히 승패를 나누는 것 외에도 끊임없이 스토리가 이어져 가는 스포츠는 진정 반목을 거듭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시즌에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합니다. 그 전에는 당장 오는 26일 SK와 삼성이 온나에서 격돌합니다.
과연 그 때 어떤 장면이 연출될지 궁금증을 더하고 있습니다.
letmeou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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