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오지환(20, LG 트윈스)은 고민이 많습니다. 겨우내 수비 훈련을 열심히 소화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실력이 많이 늘지 않았는지 "수비가 생각했던 것 만큼 안 늘어요"라고 고민을 토로했습니다.
오지환은 지난 17일 일본 오키나와 차단구장에서 열린 주니치 드래건스와 연습 경기에 앞서 열심히 수비 훈련을 했습니다. 쉬운 땅볼 타구처럼 보였지만 공을 떨어뜨리자 고개를 떨궜습니다.
오지환은 지난해 데뷔 첫 1군 풀타임 유격수로 활약하며 125경기에 출장 수비 실책을 27개나 범하며 불명예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제 별명이 '오지배'인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승리하거나 패할 때 모두 제가 관여한다는 뜻이라고 하더라고요"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습니다.

사실 오지환은 실책 수치가 말해주듯 수비를 썩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입단 첫해 김재박 전 감독으로부터 혹평도 받았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있었습니다. 오지환은 경기고 3학년 때까지 유격수가 아니었습니다. 고교시절 직구 최고 구속이 145km까지 나와서 투수로 대부분을 활약했습니다. 투수를 안 할 때는 유격수를 봤습니다.
수비를 하는데 있어서 타고난 센스도 중요하지만 '최고 유격수'로 불리는 박진만도 혹독한 훈련 덕분에 만들어진 유격수라는 사실을 알면 오지환도 앞으로 2∼3년 동안 얼마만큼 노력하느냐에 따라 유격수로서 최고가 될 수도 있습니다.
뜬금없는 질문을 하나 해도 될까요? 지난 1995년부터 현재까지 미국프로야구(MLB) 최고 유격수는 누구일까요? 아마도 뉴욕 양키스 '캡틴' 데릭 지터(37)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 수비폭도 많이 줄어 빼어난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지터는 지난해에도 최고 수비수에게 수여하는 골드 글러브상을 수상했습니다. '지터'라는 상징성도 어느 정도 플러스 요인인 것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 지터는 오지환보다 수비를 더 못하는 선수였습니다. 지난 1992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를 통해 양키스에 입단한 지터는 첫해 루키와 싱글A 114경기에서 실책을 42개나 범했습니다. 수비율이 9할도 되지 않습니다. 1993년에는 더 심했습니다. 지터는 126경기에서 실책이 무려 56개나 됐습니다. 수비율도 8할8푼9리였습니다.
천하의 지터도 프로 데뷔 후 2년 동안은 누구보다도 실책을 많이 했던 유망주였습니다. 그러나 지터는 1994년 싱글A, 더블A, 그리고 트리플A를 차례로 뛰며 138경기에서 시책을 25개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풀타임 3년째 되는 해 최고의 수비수로서 가능성을 피웠습니다. 수비율도 9할5푼9리로 급상승했습니다. 1995년에도 123경기에서 29개의 실책을 기록했지만 수비율은 9할5푼3리를 유지했습니다.
1995년 말 메이저리그에 승격된 지터는 1996년부터 양키스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며 16년 동안 유격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골드 글러브도 2004∼2006년, 2009∼2010년 총 5차례 차지했습니다.
단순히 지터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학주는 오지환과 고등학교 동기입니다. 지난 2009년 미국프로야구(MLB) 시카고 컵스와 계약해 미국으로 건너 간 그는 컵스 유망주랭킹 상위에 들었지만 지난 1월 탬파베이 레이스로 트레이드됐습니다.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이학주가 타격과 수비에서 재능이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난 시즌 118경기에서 실책을 34개나 범했습니다. 오지환보다 많습니다.
이학주는 지난 1월 OSEN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 진출 초기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습니다. 하루는 실책을 연속해서 하고 덕아웃에 들어와 고개를 숙이고 있자 감독이 직접 찾아와 왜 고개를 숙이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이학주는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고 있었던 거죠. 감독은 너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그냥 경기 중에 있을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며 이학주에게 "앞으로 또 실책을 하고 난 뒤 덕아웃에 들어와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절대 경기에 출장시키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말이 엄포지 그를 격려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학주는 지난해에도 실책을 많이 했지만 지나치게 넓은 수비 범위와 중계 플레이 송구 미스 때문입니다. 이학주는 "일부러 힘들게 잡아서 1루에 던져본다. 실책을 하고 나면 깨닫는 교훈도 있다"고 말한 뒤 "지환이는 수비 충분히 잘할 수 있다.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칭찬했습니다.
위 두 이야기를 오지환도 알고 있습니다. 스프링캠프장에서 기죽어 있는 그를 위해 조용히 이야기해줬습니다. "정말요? 정말요?" 오지환은 지터와 이학주 이야기에 모두 신기해했습니다.
많이 부족해 보이지만 지난해 오지환의 수비율은 9할4푼9리나 됩니다. 올 시즌도 오지환이 LG 주전 유격수가 유력한 상황입니다. 지난해 많은 실수를 경험한 만큼 올 시즌은 한 단계 견고한 수비를 보여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캠프 내내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있는 오지환이 올 시즌 한단계 더 성장이 기대됩니다.
박종훈 감독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박 감독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agass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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