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트…난 생계로 글 쓴 작가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1.02.22 17: 59

시나리오 교육기관 ‘심산 스쿨’ 심산 대표
영화화 위해…“돈냄새 나야 좋은 시나리오”
“처우 나쁘다 하지만 시인·소설가보다 낫지”

후배 가르친지 13년, 이제 본격 한량의 길로
[이브닝신문/OSEN=백민재기자] 심산 작가는 한량처럼 사는 인물이다. 글을 쓰고 산에 오르며 와인을 즐기는 삶. 작가이면서 동시에 시나리오 교육 기관 ‘심산스쿨’을 운영 중이다. 학생들에게 시나리오를 가르치고, 밤이면 함께 술을 마신다. 그러다 필을 받으면 훌쩍 여행을 떠나 버린다. 이런 생활이 벌써 13년째다.
 
-심산스쿨은 언제부터 운영 됐나
▲지금 하고 있는 반이 26기다. 1년에 두 기수니까 13년째.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1998년부터 시나리오 강의를 하다 2005년에 독립한 셈이다. 원래 누구 밑에 있지를 못해서. 강의를 다변화 시키려 김대우 감독 같은 이들에게 부탁해 여러 반을 만들었다. 이후에 사진반, 와인반도 만들고. 심산스쿨식 크로스오버라 할 수 있다.
-13년이면 꽤 많은 제자들을 키워냈다
▲데뷔한 이들이 한 60~70명 정도 된다. 한 기수에 2.5명 정도. 굉장히 많은 수다. 작가뿐만 아니라 감독, 프로듀서들도 온다. 대기업 사보 팀에 있는데 스토리텔링을 배워보려는 사람들도 오고. 영화사 대표들이나 제작자, CJ나 쇼박스 같은 영화 투자 담당자들도 많이 와서 배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적성에 맞나
▲난 정말 그게 안 어울리는 사람인데, 이상하게 오래 하게 된다(웃음). 선생보단 선배 작가나 친구 같은 개념이다. 언제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흥미롭다. 다양한 연령층 사람들과 술 마시고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시나리오 작법이란
▲현대 스토리텔링의 핵심 기술이다. 시, 소설, 에세이, 희곡과 비교했을 때 가장 최근에 나온 것이지만 가장 많은 것이 포함돼 있다. 꼭 영화 시나리오가 아니더라도, 기업 홍보 등을 위해서도 스토리텔링은 21세기에 꼭 필요한 콘텐츠다. 그래서 요즘 대기업 CEO 들도 스토리텔링 세미나에 많이 참여한다. 스토리텔링을 배울 때 하나를 배워야 한다면 시나리오를 배우는 게 맞다.
 
-심산의 강의는 어느 수준인가
▲힘들다. 목표가 시나리오 작가 데뷔니까. 숙제도 내고, 심지어 때릴 때도 있다(웃음). 학생들은 “고등학생 때도 이렇게는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좋은 결과가 많았다. 대학의 연극영화과 나온 얘들이 다시 여기 와서 다시 배울 정도니까.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일단 쓰는 양이 엄청나다. 600~700매 짜리 시나리오를 몇 번식 고쳐 써야 하니 체력과 의지가 중요하다. 종합 작가를 위한 하드 트레이닝 워크숍이다. 시나리오는 시처럼 어느 순간 필 받아서 쓰는 게 아니니까. 또 충무로의 실제 상황들을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고.
 
-그만큼 시나리오 작가 데뷔가 어렵나
▲영화를 하려는 이들이 보기에는 시나리오가 제일 만만해 보인다. 하지만 사실 별로 만만하지 않고, 경쟁도 심하다. 한국에서 신인 작가가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자기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1년에 10명도 되지 않는다. 4년이면 40명 나온다. 국회의원은 4년마다 300명 나오는데. 그러니까 국회의원 되기보다 훨씬 어렵다.
 
-좋은 시나리오란 무엇인가
▲돈 냄새가 나는 것. 시나리오는 영화가 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일반 문학과 다르다. 재미있고, 관객들이 많이 볼 것 같은 시나리오가 좋다. 한국영화 시장이 많이 죽었다고 하지만 영화 제작에는 여전히 40억 원 정도 들어간다. 제작자나 투자자는 그 종이를 보고 40억을 쏟아 부을지 결정하는 거다. 그 정도로 만들려면 굉장히 정밀해야 한다. 예술영화나 단편영화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상업영화는 거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익을 얻어야 한다.
 
-시나리오는 언제부터 쓰게 됐나
▲제일 큰 사건은 1980년 6월 항쟁 끝난 후, 영화 제작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면서 부터다. 이른바 주위의 386세대들이 영화 제작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영화 조감독 협회 쪽 사람들과 축구시합을 하다 “시나리오 써볼래요?”라는 제안을 받았다. 소설을 썼으니 잘 쓸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더니 200~300만원 정도를 주더라. “이게 뭐야? 글도 쓰기 전에 돈을 주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시나리오를 썼고, 데뷔도 빨리한 편이다. 이후에 ‘비트’와 ‘태양은 없다’도 쓰게 됐고.
 
-어릴 때부터 글쓰기의 소질이 있었나
▲글을 못 쓰지는 않았다. 대학교 4년 동안 여기저기 문학상을 타서 등록금을 냈으니까. 시, 소설, 평론 다 썼다. 그러니까 상을 타기 위해 글을 쓴 거다. 서른이 됐을 때,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죽어도 취직은 하기 싫어 또 글을 썼다. 그러니까 난 생계로 글을 쓴 작가다. 물론 힘든 일이다. 손가락이 부러지게 써야하니까. 그래도 난 글 쓰는 게 제일 나은 것 같다.
 
-시나리오 작가의 힘든 점이 있다면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처우가 나쁘다고는 하지만, 글 쓰는 일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제법 빨리 목돈을 주는 편이다. 소설가가 소설을 쓴다고 해서 몇 천 만원씩 주지는 않는다. 시인이 시를 쓴다고 하면 얼마나 주겠나. 그렇게 따지면 시나리오 작가는 그나마 돈을 주는 편이다. 고료가 센 작가들의 경우 1억 원씩 가니까. 물론 제대로 안주면 문제가 되지만. 또 시나리오 작가는 제작자, 투자자, 프로듀서, 감독들 사이에서 치이는 경우가 많다. 그걸 버텨내지 못하면 하기 힘들다.
 
-요즘 영화 중 재미있게 본 작품이 있나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을 봤다.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굉장히 영리하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프랜차이즈 작품이 성공한 적이 별로 없는데, 그게 가능할 것 같다. 청년필름이 그 동안 실패도 많이 했는데 이번에 흥행한 점도 반갑고.
 
-올해 계획이 있다면
▲지금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 있다. 또 영화 ‘대부’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와 제작 노트를 번역 하는 중이다. 번역은 힘들어서 하지 않으려 했는데,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지(웃음). ‘대부’니까. 여행기와 와인 관련 책도 쓸 계획이다. 올해 나올 책이 제법 많다. 여행도 하고 싶고. 가장 좋은 것은 다 합치는 거다. 안데스를 여행하면서 그 아래에서 와인 마시고 그걸 여행기로 쓰고. 그게 제일 퍼펙트하다.
<사진> 그의 취미는 책상 위의 지구본을 돌려보는 것이다. 지금도 틈만 나면 여행을 꿈꾼다. “가야할 곳이 너무 많다. 건강을 잃기 전에 가야지”라고 말한다. 2> 영화 비트(1997)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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