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구를 공략했다. 139km짜리 직구가 들어오자 시원하게 방망이가 돌았다. 타구는 좌측 담장을 빨랫줄처럼 넘어갔다. 선제 솔로 홈런. 그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한화 신고선수 정대욱(23). 그에게는 사연이 있는 홈런이었다.
지난 21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한화 잔류군과 영동대의 연습경기. 한화 4번타자 3루수로 선발출장한 정대욱이 2회 선두타자로 나와 초구를 공략해 좌월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이어 3회에도 좌중간 적시타를 날렸다. 6회 세 번째 타석에서도 좌전 안타. 이날 4타수 3안타 2타점으로 팀 공격을 이끈 정대욱의 활약에 힘입어 한화 잔류군은 영동대에 7-3으로 승리했다. 구단 사장 및 단장이 지켜본 이날 경기에서 정대욱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제대로 각인시켰다.
정대욱. 지난 2007년 대구고를 졸업하고 2차 7순위 전체 53번으로 고향팀 삼성의 지명을 받은 선수였다. 그러나 데뷔 첫 해 시즌을 마치자마자 방출선수 명단에 올랐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무살도 되지 않을 때였다. 그는 미련없이 야구를 접었다. 야구를 뒤로한 채 군에 입대했다. 상무나 경찰청이 아니었다. 현역 사병으로 군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그는 야구계에서 잊혀지는 존재가 되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야구를 버릴 수 없었다. 다행히 야구도 그를 버리지 않았다.

군복무를 마친 뒤 정대욱의 야구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져갔다. 군복무 등으로 3년에 가까운 공백기가 있었지만 그는 젊었다. 야구를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때마침 한화에서 테스트를 열었다. 그는 테스트를 신청했다. 당시 경쟁률은 23대1. 정대욱은 경쟁의 문을 뚫고 마침내 다시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2007년 말 그라운드를 떠난 뒤 3년만의 일이었다. 다시 돌아온 그라운드에서 정대욱은 그 누구보다 독한 각오로 훈련에 전념하고 있다. 한화 정영기 2군 감독은 "방망이를 치는 재질이 있다.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라고 칭찬했다.
돌고 돌아 다시 밟은 그라운드. 정대욱은 "감사한 마음으로 야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감사함을 몰랐다. 과거를 떠올린 정대욱은 "그때는 야구를 잘못하기도 했지만 간절함이 없었다. 군대를 다녀온 이후 늦게나마 정신을 차렸다.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이다. 기회를 준 구단에 보답을 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에는 감기 몸살로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다. 그런데도 절대 훈련을 거르지 않는다. 정영기 2군 감독은 "쉬라고 하는데도 쉬지 않는다. 의지가 좋다"며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정대욱은 내야수다. 삼성에서는 3루수를 봤다. 여기에 장타력을 갖췄다. 대형 내야수의 가능성이 있다. 그는 "이승엽 선배님의 타격영상을 많이 보고 연구했다. 예전에 대구에서 함께 연습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됐다"며 "마인드적으로는 스즈키 이치로를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이승엽과 이치로. 모두 가지고 있는 재능만큼이나 철저한 자기관리와 노력이 뒷받침된 선수들이다. 재능이 있었지만 노력을 몰랐던 정대욱은 이제 스스로를 깨우치고 있다.
그에게 꿈을 물었다. "부모님을 경기장에 모시고 싶다. 연습경기나 2군 경기장이 아니다. 꼭 1군 경기에 부모님을 경기장으로 데려오고 싶다"는 게 정대욱의 말이다. 밝은 조명과 뜨거운 함성이 울려퍼지는 1군 그라운드. 그곳에서 자랑스럽게 뛰는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정대욱의 마음이다. 그렇다면 신고선수 꼬리표를 떼는 게 먼저다. 신고선수는 6월1일부터 정식선수로 등록될 수 있다. 3년 만에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는데 못할게 없다. 그에게는 단호한 결의가 있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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