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스프링캠프를 취재한 지 이제 일주일 정도 되어갑니다. 지난해 클리블랜드에서 봤던 25인 로스터에 있던 주전 선수들 뿐 아니라 40인 로스터에 추천선수까지 함께 있어 처음에는 도무지 구분이 안 됐는데 이제는 선수들 얼굴도 눈에 익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칭 스태프 중 한 사람.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너무 오래 전 일이라 도무지 기억이 가물가물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긴 한데 정확히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습니다.
아차!! '박찬호 격투기 사건'. 지난 25일(현지시간) 드디어 기억이 났습니다. 여러분도 기억하십니까. 팀 벨처(49). 지난 1999년 6월 LA 에인절스 소속이던 벨처는 LA 다저스와 경기에서 번트를 대고 1루로 뛰던 박찬호(38, 오릭스 버팔로스)와 1루 베이스 근처에서 충돌했습니다. 박찬호는 당시 벨처가 자신에게 자극적인 말을 했다고 말했는데요. 벨처 코치가 그 유명한 '박찬호 쿵푸킥'의 파트너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10년 넘게 흘렀고, 이제 그가 '추추트레인'추신수(29)가 속한 클리블랜드 투수코치로 맹활약 중입니다. 벨처는 지난 1987년부터 2000년까지 통산 14년 동안 146승 149패 평균자책점 4.16을 기록한 뒤 은퇴를 했는데요. 박찬호 선수가 기록한 124승보다 22승이나 더 많이 했더군요. 이후 2002년부터 8년 동안 클리블랜드 마이너리그를 순회하다 2010년부터 매니 액타 감독과 함께 클리블랜드 투수 코치로 부임해 올해 두 번째 시즌을 맞고 있습니다.
저는 25일 클리블랜드 자체 청백전이 열리기 전 클럽하우스 복도에서 벨처 코치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박찬호 이야기는 차마 할 수 없었고요. 올 시즌 클리블랜드 투수진에 대해서 물어봤습니다.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밝혔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 줬습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불펜 피칭장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투수 코치에게 다짜고짜 이것부터 물어볼 순 없고, 일단 자신이 맡고 있는 마운드에 대한 견해를 물어보는 게 예의가 아니겠습니까.
클리블랜드는 현재 미국 현지 언론에서 약체로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그러나 추신수 선수의 말처럼 발전 가능성이 큰 선수들이 정말 많습니다. 특히 클리블랜드 마운드를 한번 살펴보죠.

클리블랜드는 지난해 '에이스' 파우스트 카르모나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유명한 선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리블랜드는 미치 탤보트, 저스틴 마스터슨 등이 후반기에도 꾸준한 활약을 보이며 아메리칸리그 팀 평균 자책점이 4위(3.89)에 올랐고요. 불펜진은 아메리칸리그 2위(2.95)를 기록했습니다.
이 때문에 액타 감독도 "우리 팀 마운드가 결코 나쁘지 않다"며 "유망주들도 많고, 지난해 후반기 우리 팀 마운드는 두터웠다"며 올 시즌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벨처 투수 코치 역시 "올 시즌 우리 젊은 투수들에게 기대가 크다. 지난해 후반기처럼 해준다면 좋은 결과가 예상된다"면서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박찬호 이야기를 물어볼까, 말까. 몇 차례 고민하다 그냥 참았습니다.
클리블랜드 담당 기자들도 벨처 코치와 박찬호 쿵푸킥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더군요. 연습경기 도중 제가 사진기를 들고 선수들 뿐 아니라 코칭 스태프도 찍고 있었는데요. 클리블랜드 지역 스포츠 라디오 프로그램인 <WTAM1100> 닉 카미노 기자는 "한국에 박찬호 쿵푸킥 주인공 소개하려고?"라고 물으며 웃음을 지었습니다. "아니다. 차마 그건 못 물어보겠더라"고 제가 말했더니, "잘 했다. 예의를 지켰다"며 웃더군요.
정작 벨처 코치와는 대화를 못했지만 카미노와 10여분 동안 이 주제를 놓고 이야길 했는데요. 카미노는 "먼저 자극적인 말을 한 벨처 코치도, 쿵푸킥을 날린 박찬호도, 둘 다 명백하게 잘못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agass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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