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프로야구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 중 하나는 한화 '슈퍼루키' 유창식(19)이다.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한화에 지명돼 계약금 7억원을 받고 입단한 그는 프로야구 핫이슈다. 지난달 28일 첫 실전등판한 LG와의 연습경기에서 1이닝 무실점한 것이 톱기사로 다뤄질 정도.
그러나 한대화 감독은 이를 경계하는 눈치다. 자칫 어린 선수에게 너무 큰 짐을 줄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한화 팀 사정상 유창식에게 거는 기대가 더 큰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한 감독은 "아직 고등학생이다. 너무 많은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고 했다. 역대 프로야구를 살펴봐도 순수 고졸 신인이 팀을 바꿔놓은 사례는 많지 않다. 그래서 그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 1992년 롯데 염종석, 빙그레 정민철
순수 고졸 신인으로 리그 판도를 바꿔놓은 신인은 1992년 롯데 염종석과 빙그레 정민철이 거의 최초다. 부산고를 졸업하고 계약금 1500만원에 롯데에 입단한 염종석은 35경기에서 17승9패6세이브 평균자책점 2.33으로 롯데의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13차례나 완투하는 등 204⅔이닝을 소화하며 신인왕, 평균자책점 1위,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염종석 못지않게 정민철도 빙그레의 마지막 전성기를 함께 했다. 대전고를 졸업한 뒤 계약금 1400만원에 빙그레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그는 33경기에서 14승4패7세이브 평균자책점 2.48을 기록했다. 그해 평균자책점 1~2위가 바로 염종석과 정민철이었다. 프로야구 사상 고졸 신인 투수들이 평균자책점 1~2위를 석권한 건 처음이자 마지막. 그해 롯데와 빙그레는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는데 두 선수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려웠다.
▲ 1994년 LG 김재현
1994년 LG는 신인 3총사로 기억된다. 유지현-김재현-서용빈이 1~3번 타순을 맡으며 공수에서 펄펄 날았다. 그 중심에 바로 김재현이 있었다. 신일고를 졸업하고 당시 고졸 신인 계약금으로는 최고액에 해당하는 9100만원을 받으며 LG에 입단한 그는 고교야구를 주름잡은 대형타자답게 빠르게 적응했다. 125경기에서 타율 2할8푼9리 21홈런 80타점 81득점 21도루. 장타율도 0.495로 전체 4위. 호타준족의 등장을 알리는 화려한 성적표였다. 고졸 신인으로는 최초로 두 자릿수 홈런을 20개 넘기며 기록했고, 최초의 신인 20-20 클럽 주인공이 됐다. 공격적인 2번타자의 효시는 김재현이었다. 그해 LG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창단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남아있다. 고졸신인 타자가 프로에서 바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증명해 보인 사례이기도 하다.
▲ 1998년 현대 김수경
인천 연고 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에는 이 선수가 있다. 인천고 출신 김수경. 계약금 2억1000만원을 받고 현대 유니폼을 입은 그는 현대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은 6차전에서 선발로 나와 6⅓이닝 무실점으로 선발승을 거뒀다. 그해 현대는 최초로 선발 투수 5명이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둔 투수 왕국의 결정체로 기억된다. 그 중심에 바로 고졸 신인투수 김수경이 있었다. 32경기에서 12승4패2세이브 평균자책점 2.76. 빠른 직구와 강력한 슬라이더로 프로 선배들의 방망이를 비웃었다. 그해 그가 허용한 피홈런은 6개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공에 힘이 있었다. 한국시리즈 6차전이라는 중요한 경기에 선발로 나갈 수 있었던 이유였다.

▲ 2001년 한화 김태균
고졸 신인타자가 성공한 건 김재현이 마지막일 듯 싶었다. 프로의 수준이 높아졌고,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타자가 리그에 적응하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김태균은 달랐다. 천안북일고를 졸업한 뒤 계약금 1억6000만원을 받으며 한화에 입단한 그는 시범경기에서 3루수로 나와 실책을 저지른 뒤 시즌 초반 2군에 머물렀다. 하지만 구단 사장이 직접 콜업할 지시할 정도로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사장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 김태균은 그해 88경기에서 타율 3할3푼5리 20홈런 54타점을 기록했다.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한 가운데에서도 20홈런을 넘어선 어린 거포의 장타력에 프로야구는 깜짝 놀랐다. 짧은 순간 놀라운 임팩트를 남기며 당당히 신인왕을 차지했다. 시즌 초반 하위권에서 허덕였던 한화도 김태균이 4번타자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시점에서 상승세를 타며 포스트시즌에 나갔다.
▲ 2006년 한화 류현진
지금껏 프로야구에는 많은 괴물이 등장했지만 이 괴물처럼 충격적인 괴물도 없었다. 류현진. 인천 동산고를 졸업하고 2차 1번으로 지명돼 계약금 2억5000만원을 받을 정도로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그 정도일 줄은 누구도 몰랐다. 30경기에서 18승6패1세이브 평균자책점 2.23. 6차례의 완투를 포함해 201⅔이닝을 소화했다. 선동렬만이 4차례 달성했던 투수 트리플 크라운을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가 아무렇지 않은듯 작성해버렸다. 좌완으로서 당당한 체구에서 뿜어지는 강속구, 속성으로 배웠으나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만든 서클 체인지업이라는 막강 무기로 프로야구 타자들의 새로운 충격과 공포로 군림했다. 류현진은 프로야구 최초의 MVP-신인왕 동시석권의 주인공이 됐다. 한화도 1999년 이후 7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류현진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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