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포스트시즌이 한창이던 10월의 어느 날. SK 선수단은 홍팀과 백팀으로 나뉘어 연습경기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한국시리즈에 대비한 훈련이었죠.
당연히 김성근 SK 감독이 가장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경기에 몰입하며 메모에 열중하던 김 감독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뜸 "합창하는 것 봤나"고 물었습니다. '합창?' 당시 KBS 2TV에서 방영돼 전국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합창단'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김 감독은 "그걸 보면 마치 SK를 보는 것 같다. 각자의 목소리가 하모니를 이뤄가는 모습이 마치 서로에게 맞춰가는 우리 SK 선수들과 닮았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편을 보고 있자니 정말 감동적이었다. 눈물이 나더라. 지휘를 했던 박칼린 교수의 심정을 알겠더라. 쉽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정말 카리스마가 대단하더라. 하지만 마지막에 울더라. 리더는 그런 것이다. 끝까지 앞에서는 힘들어도 표현할 수 없다"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습니다.

박칼린 교수가 지휘하는 합창단을 통해 자신과 SK 선수단을 바라 본 것이었습니다.
또 김 감독은 지난 1월초 허리 디스크 수술 후 퇴원, 청와대에서 초청하는 신년음악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이날 공연은 정명훈 예술감독의 지휘 속에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펼쳐졌습니다.
김 감독은 공연 소감에 대해 "여러 악기가 한데 어울려 하모니를 이루더라.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훌륭한 음악이 나왔다"고 감탄했습니다. 역시 지휘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항상 입버릇처럼 SK를 두고 "이 팀은 개인으로 가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는 팀이다. 조직을 이뤄 갈 때 비로소 힘이 발휘되는 팀"이라던 김 감독입니다. 선수단의 팀워크, 즉 하모니를 절대적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죠.
선수단 운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김 감독이 이런 하모니를 얼마나 중요시 하는지 느껴집니다.
가까운 예는 2차 캠프지였던 오키나와에서도 있었습니다. 구시카와 구장에서 한창 훈련하던 김 감독은 캐치볼로 몸을 풀던 3명의 선수를 불러세웠습니다. 이호준, 최동수, 정근우였습니다. 그리고 짐을 싸서 이 3명을 숙소로 돌려보내 버렸습니다. 이유는? 정말 사소한 것이라 공개하기조차 망설여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김 감독은 "조금만 훈련해도 아프다고 한다. 이래서는 힘들다"며 "팀이 어떤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결국 본보기였습니다. 이호준은 주장이었고 최동수는 팀내 최고령 선수였습니다. 정근우는 스타플레이어로 붙박이 2루수로 차세대 주장 후보군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3명 다 팀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합니다. 셋을 통해 선수단 전체에 일종의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죠.
효과는 별로였던 것 같습니다. 우선 김 감독은 스프링캠프를 마치면서 "이번 전지훈련은 점수로 따지면 60정도"라면서 "전체적인 밸런스가 좋지 않다"고 살짝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그리고는 17명의 선수를 귀국시키지 않고 그대로 오키나와에 남겼습니다.

그만큼 올 시즌을 심각하게 바라 보고 있다는 것을 알린 것이죠. 하모니가 무너졌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6일 17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선수가 귀국한 다음날인 7일 깜짝 발표가 났습니다. 이만수 수석코치를 2군 감독으로 변경하고 이철성 코치를 수석코치로 바꾼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더불어 계형철 2군 감독은 재활코치로 보내고 김태균 수비코치를 타격코치, 정경배와 김경기 타격코치는 각각 수비코치와 주루코치로 보직을 수정한 것입니다.
코칭스태프의 보직 변경은 사실상 감독의 고유권한입니다. 다양한 이유에서 이런 자극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심각합니다. 스프링캠프가 끝나자마자 1, 2군의 오르내림이 아니라 보직 자체를 바꾼다는 것은 선수단 전체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경배 코치와 김경기 코치의 경우는 전훈 동안 선수들에게 내내 타격을 지도했습니다. 김태균 코치는 수비를 지도했지요. 외국인 코치들이 메인이라고는 하지만 선수들에게 이들의 존재는 상당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루 아침에 바꾼 것입니다.
코치들은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쳐도 선수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대부분 놀란 표정입니다. 한숨과 궁금증이 뒤섞여 나타났습니다. 그 만큼 이런 코칭스태프 변경은 시즌 중 극약처방으로 내리는 것이고 신중한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이런 결정을 시즌 시작도 하기 전부터 내린 김 감독의 마음 상태가 어떤지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의도나 속내를 떠나 김 감독 입장에서는 전체적인 밸런스, 곧 하모니가 깨져 있다고 느낀 것 아닐까요. 먼 훗날 이번 코칭스태프 변경 부분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이 나올 것입니다. 하지만 박칼린의 합창, 정명훈의 오케스트라를 통해 다시 한 번 느낀 하모니의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번 코칭스태프 변화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결과는 머지않아 서서히 드러날 것입니다.
letmeout@osen.co.kr
화보로 보는 뉴스,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OSEN 포토뉴스’ ☞ 앱 다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