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전쟁에 이긴 영국인 위해 탄생
스팸·환타·설렁탕 등 전쟁 음식사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

도현신|384쪽|시대의창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1930년대 초반, 햄을 만드는 육류 가공업체였던 미국 호멜 사가 고민에 빠졌다. 돼지 어깨 부위의 살이 남아도는 거다. 뼈가 많은 그 부위 살들을 폐기하기 위해 별도의 비용까지 들여야 할 형편이었다. 고심 끝에 회사 경영진이 내린 대안은 소금양념을 해서 깡통에 넣은 다음 싼 가격에 판매하자는 것. ‘양념한 고기와 햄’(Spiced Meat and Ham)이란 스팸(SPAM)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스팸은 2차대전이 터지면서 중요한 군용물자로 자리를 잡는다.
‘가난한 자들의 고기’였던 스팸은 이후 정말 가난한 나라로 건너가 진가를 발휘한다. 광복 이후 한국전쟁 시절 미군 부대에서 나온 스팸 덩어리는 요리 축에 들 수 없었던 다른 재료들과 함께 독특한 메뉴를 만들어낸다. ‘부대찌개’다. 햄은 물론 소시지, 콩 통조림인 ‘베이키드 빈스’까지 원산지는 모두 ‘부대’다.
전쟁과 요리를 연결했다. 그리스와 로마시대부터 유럽 나폴레옹과 중국 청나라를 거쳐 2차대전과 한국전쟁까지 전란 중 처음 만들어졌거나 전쟁 이후 새롭게 생긴 음식들이 다채롭게 소개됐다. 만두, 맥주, 환타, 커피, 라면 등 흔하디흔한 음식들의 출생배경을 더듬으며 세상 움직이는 변수에 음식이 빠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굶주림에 지친 군인들이 전쟁의 양상을 바꾸기도 했고, 하찮은 저장음식이 백만군대보다 큰 힘을 갖기도 했으며, 전리품으로 전해진 향신료가 세계 무역지도를 바꿔놓기도 했다.
중국요리 탕수육엔 애환이 있다. 아편전쟁 직후 수세에 몰린 중국인들이 영국인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개발한 굴욕의 음식이기 때문이다. 1842년 청나라는 영국과 강화조약을 체결한다. 이후 150년간 홍콩은 영국의 지배령에 들어가게 된다. 당시 홍콩에 이주를 시작하던 영국인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인들이 고심한 산물이 탕수육이다. “영국인들은 연신 탄성을 내질렀다. 입에 쩍쩍 달라붙는 기막힌 맛도 맛이려니와 무엇보다 힘들게 젓가락질을 하지 않고 포크를 쓰듯 그냥 대충 찍기만 해도 쉽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고유의 음식이 다 된 소주와 설렁탕이 처음 전해진 건 13세기 초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 때였다. 이와 유사한 예는 이탈리아에도 있다. 피자와 더불어 이탈리아 요리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파스타도 외부에서 들여온 음식이다. 9세기 경 시칠리아를 정복한 아랍제국이 가져왔다. 망명한 멕시코 초대 대통령 산타 안나를 통해 미국에 전해진 치클 껌, 나폴레옹이 전쟁 중 상하지 않는 군량을 고민하다 개발을 유도한 뒤 히트 상품이 된 통조림도 있다.
2차대전 중 독일로 오던 콜라 원액이 끊기자 대신 개발하게 된 환타에 관한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초창기 포장지에는 호랑이들에게 물어뜯기는 유대인들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히틀러의 유대인 탄압을 위한 정당성은 환타 병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euanoh@ieve.kr /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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