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대신 배꼽 훔쳐가네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1.03.18 17: 02

-연극 ‘늘근도둑이야기’
22주년 맞은 사회풍자극…이대연·김뢰하 연기 환상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도둑질에도 도가 있다고.” ‘성용의지인’. 우선 집에 뭐가 감춰져 있는지 척 보고 알아야 하는 ‘성’, 담장을 넘을 때 맨 앞에 서는 ‘용’, 현장에서 맨 뒤에 나오는 ‘의’, 또 언제 훔쳐야 하는지 때를 아는 ‘지’, 훔친 물건에 대해 ‘뿜빠이’를 잘하는 ‘인’. ‘장자 거협편’에서 대도로 묘사되는 도둑의 5가지 도를 들먹이며 나름의 철학을 설파한 ‘늙은 도둑’은 ‘덜 늙은 도둑’과 함께 어느 부잣집에 들어앉아, 정말 때를 기다리며 죽치고 있다. 뭐가 분명 있을 거라고 ‘척 보고 알아내’ 담장을 넘은 뒤였다. 인간적인 늙은 도둑들이 그간의 명성에 걸맞은 연기를 쏟아내고 있다. 무대로 돌아온 연극 ‘늘근도둑이야기’가 무기한 공연을 선언했다.

 
마치 공원 같은 ‘그분’의 집 담을 넘은 도둑들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감옥에 들락날락 하느라 딱히 거주지가 없는 늙은 도둑과 ‘충남 연기군 삽질면 포클레인리’가 거주지인 조금 덜 늙은 도둑이다. 세계적인 미술가들의 그림들이 소장돼 있는 웅장한 집에 들어선 그들은 금고를 옮겨나갈 때를 기다리며, 술 한 잔까지 곁들인 채 ‘왕년’의 한때를 되돌아본다. 
늙은 도둑의 도둑 철학은 ‘별타령’까지 이어진다. 대한민국에 별이 없으면 예술도 정치도 문학도 안 된다는 거다. 평생 절도업에 종사하며 오로지 한 길만 파, 사유재산 재분배와 평등사회에 이바지한 공로로 ‘훈장’까지 받은 그가 단 별은 18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모든 것을 훔쳐낼 수 있는 그도 그림만큼은 안 건드린다. 왜? 남의 ‘나와바리’이기 때문이다.
앙상블이 중요한 작품의 진가는 제대로 발휘됐다. 탄탄한 호흡을 이룬 두 도둑은 때론 실랑이와 타박으로 때론 북돋움과 회한으로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위로한다. 작품은 1989년 초연하며 시사코미디 연극으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이후 20여년 동안 간간이 무대에 오르면서 선 굵은 배우들의 면면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문성근, 명계남, 박광정, 유오성, 박철민 등이 거쳐갔다. 그때마다 이슈화된 사회·정치문제를 가미하는 각색을 거치며 풍자의 세계를 확장해 왔다. 이번 공연은 극단 차이무의 대표 민복기가 연출을 맡았다. 배우들에게 섬세한 연기를 주문하는 그 덕분에 좀더 인간적인 도둑들을 만날 수 있다.
공연 내내 뛰고 걷고 떠든다. 무엇보다 말장난 같은 두 도둑의 대화, 또 이들의 혐의를 입증하려는 수사관의 치기어린 말에 작품의 재밋거리가 있다. 그런데 조금 더 나가도 될 뻔했다. 풍자하고 비꼬아야 할 것은 차고 넘치는데 너무 아낀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늙은 도둑’과 ‘덜 늙은 도둑’ 여기에 한 명의 수사관이 가세해 꾸린 3개의 팀이 각기 다른 색깔의 연기를 펼친다. 특히 두 도둑으로 나온 배우 이대연·김뢰하 콤비는 그간의 연기내공에 힘입어 매끄럽고 능란한 ‘늙은 도둑’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이외에 김승욱, 이성민, 박원상, 최덕문 등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번갈아 관객들을 웃긴다. 서울 동숭동 아트원씨어터 3관 차이무극장에서 오픈런 중이다.
euanoh@ieve.kr /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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