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의 임창용 등장인가.
등번호 39번. 해태에서 삼성으로 넘어온 뒤 2년간 임창용이 '애니콜'이라는 별칭으로 활약하며 달았던 그때 그 등번호다. 호리호리한 몸에서 유연하게 뿜어져 나오는 150km 안팎의 강속구로 윽박지르며 타자들을 돌려세웠던 임창용. 사실 그 정도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한화에서 그와 닮은 선수를 올해 자주 볼 수 있을 듯하다. 시범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8년차 사이드암 정재원(27)이 그 주인공이다.
정재원이 예사롭지 않다. 정재원은 지난 19일 대전 롯데전에서 선발 안승민에 이어 두 번째 투수로 6회부터 등판했다. 그의 등판은 8회 2사까지 계속됐다. 2⅔이닝 2피안타 1볼넷 4탈삼진 2실점. 시범경기 3번째 등판에서 거둔 3번째 홀드. 시범경기이지만 이용찬(두산)과 함께 홀드 부문 공동 1위에 올라있다. 내용이 더 압권이다. 3경기에서 5⅔이닝 동안 탈삼진 9개를 잡는 위력투를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피안타 3개와 볼넷 3개로 이닝당 출루허용률은 1.05이며 평균자책점도 3.18로 안정적이다.

지난 2004년 2차 4번 전체 26순위로 한화에 지명된 정재원은 안산공고가 배출한 최초의 프로 지명선수였다. 그의 3년 후배가 김광현(SK)이다. 그러나 프로 입단 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공은 빠르지만 제구가 들쭉날쭉했다. 2009년 잠깐 기회를 얻었으나 지난해 다시 2군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야구가 뜻대로 되지 않자 이름도 '정종민'에서 '정재원'으로 바꿨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1년 반 전의 일이었다. 개명의 효과는 뒤늦게 보고 있다.
정재원은 "원래 볼 스피드는 좋았다. 그동안 제구가 문제였는데 지난해 가을부터 한용덕 투수코치님과 함께 컨트롤을 잡는데 주력했다. 아무리 빠른 공을 던져도 제구가 되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부터 투구 밸런스를 잡는데 주력했고 그 뒤로 마운드에서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마운드에서 집중력에도 신경 썼다. 종으로 떨어지는 특유의 슬라이더도 예리하게 가다듬었다. 그러자 그의 빠른 강속구가 더욱 빛을 내기 시작했다.
정재원은 시범경기 연일 호투하고 있다. 3경기 모두 홀드를 기록할 정도로 필승계투조에서 두드러지는 피칭을 하고 있다. 특히 직구 최고 구속은 140km 중후반대를 꾸준히 찍더니 급기야 19일 롯데전에서는 최고 150km까지 나왔다. 여기에 결정구로 가미한 슬라이더에 타자들의 방망이가 속속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제구가 안정됐다. 한대화 감독은 정재원에 대해 "제구가 많이 안정됐다"며 "작년부터 쭉 제구 보완을 주문했다. 앞으로 경험을 쌓으면 더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난 15일 대전 SK전에서 2이닝을 탈삼진 2개 포함 무실점으로 막았던 정재원은 "볼넷을 3개나 줬다"며 아쉬워했다. 볼 스피드 대신 볼넷 갯수에 신경 쓰는 투수가 된 것이다. 그는 "이제 밸런스가 잡혔다. 예전에는 마운드에 오르면 맞을까 걱정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며 "시범경기이지만 코칭스태프에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기회"라며 눈빛을 반짝였다. 그의 공을 받은 포수 신경현은 "제구가 정말 많이 좋아졌다. 원래 볼이 빠른데 힘이 더 붙었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정재원의 공은 단순히 스피드만 빠른 게 아니라 무브먼트까지 좋다.
'150km 잠수함' 정재원이 한화의 임창용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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