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작가 고료 살펴보니
[이브닝신문/OSEN=김미경기자] <얼핏 보니 ‘뻔’한 얘기다. 재벌 2세가 나오는가 싶더니 신데렐라 여주인공이 깜찍하게 등장한다. 줄거리에 감이 잡히고 결말까지 짐작이 가는 거다. 그런데 이상하다. ‘세상에 이런일이?’가 ‘내게도 저런 일이?’로 바뀐다. 간헐적으로다가 눈물도 훔치게 되는 거다. 물아일체감이 들 정도니 드라마 앞에 식후경을 논할 가치도 없다. 드라마에 꽂힌 거다. 근친상간에 반전 코드를 빼어든 작가의 이번 패가 성공한 셈이다. 시청자, 또 말려들었다. 훅~ 빠지게 만들고 보는 국내 손꼽히는 인기 드라마작가 순위다. 마니아층이 두터운 만큼 고료에 따른 순위만 매겼다. >

일상이 되레 비현실적일 때가 있다. 드라마를 보고 있자니 주인공의 일상이 내 것인 마냥 서럽고 애틋해진다. 시청자들을 얼마만큼 착각의 늪으로 빠지게 만드느냐는 드라마작가의 글발에 따라 달라진다. 연신 입에 쩍쩍 달라붙는, 튀는 대사를 날리는 캐릭터들의 살아 숨 쉼도 작가 집필 능력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미리 준비해 놓은 모범 답안 같지만 퇴고하기를 여러 번. 주부 시청자들의 힘을 등에 업고 스타 작가 시대를 연 주인공들이 있다. 1970~80년대 주 장르는 단연 홈멜로물. 가족과 남녀의 사랑, 갈등 등을 드라마 서사구조로 불러들인 1세대 작가들이 대표적이다.
스타 드라마작가의 대표주자는 김수현(사진)이다. 그는 ‘청춘의 덫’ ‘사랑과 야망’ ‘엄마가 뿔났다’ 등 다수의 히트작을 써왔고 써내는 족족 안방극장을 독차지했다. ‘옥이이모’ ‘서울의달’ ‘짝패’의 김운경 작가의 드라마는 인간적이다. 미움과 증오로 가득 찬 악한 캐릭터가 그의 드라마엔 없다. 재벌보다는 서민들의 이야기가 주류다.
2세대 스타 드라마 작가로는 ‘거짓말’의 노희경, ‘소문난 칠공주’의 문영남, ‘왕꽃선녀님’의 임성한, ‘제빵왕 김탁구’의 강은경 등이 있다. 3세대는 ‘선덕여왕’의 김영현, ‘시크릿가든’의 김은숙,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홍정은·홍미란 자매 등이 대표적인 스타작가다.

소설이 시나리오보다 더 우월한 장르던 시대도 지났다. TV드라마 작가 황금시간대 60분 드라마 1회분 고료도 1000만원 이상. 웬만한 소설 인세보다 많다. 선망받는 직업이 됐다. 작가 등용문이 되고 있는 극본공모 때마다 수천편의 작품이 몰린다. 경쟁률이 수백대 1인 셈이다.
2008년 국정감사에서 KBS와 MBC는 자체 제작 드라마의 작가에 회당 200만원에서 최고 1400만원까지 준다고 밝힌 바 있다. 국정감사 대상이 아닌 외주 제작사는 일명 A급작가에게 회당 3000만~4000만원 이상 준다. 지난해 김수현 작가는 SBS로부터 회당 5000만원을 받아 최고 기록을 세웠다. 회당 1400만원 넘게 받는 노희경 작가도 뒤지지 않는다. 최근 시크릿가든으로 물망에 오른 김은숙 작가도 3000만원 작가대열에 합류했다. 가장 트렌디한 소재로 화려한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고료는 이번 시크릿가든 인기로 더욱 인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방송작가협회에 따르면 보통 단막극은 400만원대, 주간연속극은 회당 200만~300만원을 받는다. 재방송할 땐 기존 원고료의 30%를 더 받는다. 스타작가 고료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회당 최고 1000만원이었는데 불과 10년도 못돼 4~5배 이상 뛴 셈이다.
▲출생의 비밀만 있으면 대박?
알고 보니 사랑하는 연인은 남매사이였다. 재벌2세 남자 주인공은 그 아픔에 불치병에 걸리고 아버지는 옛 여인과 다시 사랑에 빠진다. 신데렐라, 재벌, 출생의 비밀, 불치병, 여자의 성공, 삼각관계 등은 수많은 한국 드라마의 전형적인 흥행 코드다. 막장 출생의 비밀만 있으면 뜬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모든 문제는 가족과 연관되는’ 한국 사회에서 얽히고설킨 가족관계 구조는 드라마의 주류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제는 통하지 않는 법칙도 많다.
적극적인 삶을 사는 현대여성상을 반영해 남편과 화해하는 구도는 사라진지 오래다. 리얼리티를 살려 주인공의 화장기도 없앴다. 트레이닝복에 목이 늘어난 싸구려 티셔츠가 등장한다. 상투적 표현보다 영화처럼 다양한 형식의 실험도 제법 보이는 낌새다. 하지만 신데렐라식 해피엔딩이나 시어머니와의 갈등 등은 대리만족 효과가 커 드라마 법칙의 주요소인 건 분명하다. 이야기 하는 방식이나 반전에 대한 암시효과, 밀도 있는 대사는 더욱 더 탄탄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밥에 그나물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 셈이다.

▲단막극도 있었다! 엄태웅 출연작 이채
드라마 폐인이라면 꼭 알아야할 단만극이 있다. KBS 2TV 드라마시티 ‘제주도 푸른밤’(2004년작)이 그것이다. 슬리퍼 끌고 편의점에서 마주칠 것 같은 옆집 남자 배우 엄태웅이 입지를 굳힌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으로 그해 KBS연기대상에서 단막극특집상을 받았으며 ‘엄정화의 남동생’에 지나지 않던 그가 진정한 연기자로 면모를 과시했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남자(엄태웅)와 그를 잊지 못하는 한 여자(김민주)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는 요즘 세대와는 전혀 다른 곰삭은 사랑으로 이야기한다. 흑백화면으로 제작, 사건이 벌어지는 한 신을 한번에 롱테이크로 잡아내는 등 TV드라마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연출기법도 적극 사용했다. 여느 배우들처럼 엄태웅은 TV드라마를 떠나가지 않기를. 예능까지 섭렵한 엄포스의 배신 시나리오가 그려지지 않는 이유다.
kmk@ieve.kr /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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