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차게 시작한 MBC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가 좌초될 위기에 빠졌다. 책임PD는 물러났고, 출연 가수들은 방송에 의욕을 잃었고, 다른 인기 가수들은 섭외에 손사래 일색이다.

지난 6일 첫방송부터 관심 있게 지켜봐온 가요계는 ‘나가수’가 요즘 시청자와 사회 분위기, 그리고 가요계 풍토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있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출연 가수의 매니저를 비롯한 가요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나가수’의 결정적 실수 세가지를 모았다.
# 리얼버라이어티와 오디션프로그램, 구분 못했다
출연 가수 측은 ‘나가수’ 제작진이 웃고 즐기는 리얼버라이어티와 엄숙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계를 잘못 드나든 게 아닌가 진단하고 있다.
출연자들에게는 훌륭한 무대를 제공하는 대신 조금 재미있는 상황 설정이 있는 리얼 버라이어티 느낌이 강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시청자들에게는 톱스타들의 엄숙한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홍보해버린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는 “에이, 형님 한번만 봐주고 다시 합시다”가 성립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결과 불복은 출연자의 캐릭터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긴다. 특히 오디션 프로그램은 최근 공정 사회 열풍과 맞물려 상당히 ‘깨끗한’ 환경을 요구받고 있는 중. ‘나가수’는 출연자와 시청자가 갖고 있는 포맷 이해차를 방송에 그대로 노출함으로써, 출연 가수들을 ‘시청자의 기준을 무시한 사람들’로 오인하게 만들었다.
출연 가수 측은 방송을 보고서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고 했다. 한 가수의 관계자는 “이미 녹화는 돼있는데, 방송에서는 계속 탈락자가 누구일지 기대를 모으게 하더라. 방송을 보면서 ‘저거 대체 어떻게 수습하려고?’라고 걱정했었다”고 말했다.
# 가수들의 각별한 선후배 관계, 대처하지 못했다
김건모의 탈락은 분명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었지만, 이후 다른 출연진의 행동은 사실 ‘돌발상황’이 아니다. 후배 가수들이 선배 가수의 탈락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것이라는 제작진의 짐작 역시 잘못된 것이었다.
가요계에서 가장 중시되는 것들이 바로 의리와 정. 방송 포맷이 가혹하다 하더라도, 톱가수들끼리 ‘가요계 부흥을 위해 힘써보자’고 모인 자리에서 선배 가수에게 후배 가수들이 ‘잘 가라’고 인사하는 것은 영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일반인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닌, 가수들의 음악프로그램이라고 이해했던 가수들은 한번쯤 선배를 배려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터. 수십년 만에 겪어보는 ‘붙느냐, 떨어지느냐’의 관문 앞에서 감정적으로 변한 가수들의 반응을 제작진이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것이다.
가요관계자들은 ‘나가수’가 김건모에게 재도전 기회를 준 것이 특권층에게 기회가 더 돌아가는 사회 구조와 맞물려 해석되는 데에 큰 유감을 표했다.
한 가요관계자는 “그가 최고의 자리에 있었고, 존경받는 가수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최근 가요계에서 큰 특권을 누린 것도 없다. 오히려 데뷔 20주년도 됐으니, 김건모가 이번 무대를 계기로 꼭 재기에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정서가 있었다. 제작진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이런 마음이 마치 불공정 사회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지다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같이 끈끈한 정서는 가수와 PD의 관계에도 이어진다. 프로그램 출연시 꼼꼼하게 따져보지도 않고, 좋아하는 PD와 손잡는 경우도 왕왕 있는 상태. 그만큼 PD와의 신뢰는 상당히 중요하다. MBC는 가수들의 의견에 흔들린 김영희 PD를 금방 내처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 가수들의 지지도 잃게 됐다.
한 출연 가수의 관계자는 “김영희 PD 교체에 분명히 반대한다. 이제 누굴 믿고 가야 하나. 프로그램이 힘든 시기인만큼 당장 하차를 논의하진 않겠지만, 적당한 때를 기다리게 되지 않을까”라고 내다봤다.

# 시청률보다 ‘호감’이 더 중요하다는 것, 몰랐다
가요계는 ‘나가수’의 편집에 큰 문제가 있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이소라가 일부 기사에서 예민한 ‘아마추어 MC’로 보도되는 데에 상당한 유감을 표하고 있다.
사실 혼자 작업하는 데에 오랜 시간을 들이는 대부분의 인기가수들에겐 유별난 구석이 있게 마련. 이같은 면은 가요계에서 오히려 장점으로 받아들여진다. 보통 사람들처럼 타협 잘하고 성격 좋으면, 무대 위에서 폭발적인 카리스마를 내기가 어렵다는 게 공통된 인식이기 때문.
문제는 ‘나가수’가 이같은 인식을 시청자 역시 같이 하리라고 믿은 데 있다는 것. 무대에 앞서 잔뜩 예민해진 가수들과 가슴 아픈 상황에 잠깐 녹화를 멈추자고 하는 모습은 그리 새로울 게 없지만, ‘나가수’는 이를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면서 기존 리얼 버라이어티 속 ‘착한 예능인’들과 너무 차이가 도드라지게 만든 셈이다.
동시간대 방영되는 KBS ‘1박2일’ 속 가수들이 가위바위보에 한번 졌다고 야외취침을 하고 까나리액젓을 원샷하는 광경에 익숙했던 시청자들에게는 순식간에 ‘비호감’으로 찍힐 수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에 출연 중인 가수의 한 관계자는 “‘나가수’가 리얼의 뜻을 잘못 이해했다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가수들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내보낸다고 그게 리얼이 아니다. 기존 리얼 버라이어티들이 리얼을 표방하면서 가수들의 어리숙하고 코믹한 모습을 내보낸다 해도, 자칫 비호감으로 비칠 수 있는 부분은 얼마나 철저하게 커버하는지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가요관계자도 “요즘 시청자들이 ‘비호감’에 대해 심하다 싶을 만큼 집요하게 파고든다. ‘나가수’는 그런 시청자들에게 빌미를 많이 줬다. 요즘 시청자들은 욕 한번 하고 채널을 돌리는 수준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여론을 형성한다. 김건모 재도전을 정해놓고도, 여전히 서바이버에 중점을 두고 편집해 시청자를 ‘낚은’ 것은, 단순히 며칠 논란이 일고 끝날 문제는 아니었다”고 평했다.
rinn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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