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 취재석=이혜린 기자] 방송국의 막강한 영향력을 등에 업은 음원들이 연일 차트를 휩쓸면서, 이로 인해 가요시장이 '아사'할 수 있다는 우려가 흘러나오고 있다.

얼핏 들으면, 말도 안되는 소리다. 노래 잘하는 가수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흘러간 명곡들을 재조명해 가요계가 더 풍성해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엠넷 '슈퍼스타K2'는 허각 등 기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선 쉽게 발굴하기 어려웠을 가수를 만들어냈고, MBC '나는 가수다'는 박정현, 김범수 등을 다시 '핫'하게 만들었다.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이 음원시장에 기존 가수들과 '동등하게' 진출해버리면 얘기는 달라진다. 대중이 보기에 이들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기존 상업적인 엔터테인먼트 업계로부터 소외된 이들이요, 시장경제에서 영원한 약자이겠지만, 실상은 방송국이라는 국내 최고의 채널을 등에 업은 '괴물'이기 때문이다.
방송국은 프라임 시간대에 자신들이 판매할 음원을 '직접' 광고하고, 이를 감동과 자극으로 버무려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으로 포장시킬 수 있다. 그리고 팬서비스라는 미명 하에 음원을 돈받고 팔기 시작한다.
물론 시청자들이 해당 음원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존중해야 한다. '슈퍼스타K'와 '위대한 탄생', '나는 가수다' 출연진의 노래가 '진심'이라는 것도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방송국의 음원 장사가 정말 시청자와 가요계만을 위한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MBC가 음원을 서비스하는 방식은,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따라 음원을 무료로 서비스하는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라, 유통업체와 미리 계약을 맺고 음원을 제작해 음원시장에 풀어놓는 비지니스 모델을 따르고 있다. 주체가 방송국일 뿐 음반회사가 하는 일과 똑같다.
한 가요관계자는 "대형기획사가 방송국을 산다고 하면, 이상하게 볼 것 아니냐. 방송국이 음원을 제작해 파는 것도 그리 공정해보이진 않는다. 물론 법적으론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대중이 원하는 대로 자유 경쟁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도 있다는 걸 안다. 마치 대기업 슈퍼 앞에 내몰린 구멍가게 주인이 된 기분이다"고 씁쓸해했다.
OSEN이 지난달 31일 보도한 '‘나가수’가 가요계 죽인다.. 제작자 긴급회의'라는 기사에서 제작자들이 집중적으로 우려를 표한 것도 이같이 방송국이 음반산업에 사실상 진출한 사태의 부작용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후 논란의 쟁점은 '음원 수익을 출연 가수에게 얼마나 나눠주느냐'는 부분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양상이다. 당장의 수익 몇십프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너무나 예상과 딱 맞아떨어지게도, 보도를 접한 일부 네티즌은 '니들이 좋은 음악을 안만드니까 안사는 것이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좋은 음악이 아니니까, 사지 않겠다'는 것과 가수들이 공정한 경쟁조차 해볼 수 없는 전쟁터를 방치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또 시스템의 오류를 지적할 때 '니들 노래 안좋아'라고 냉소하다가 큰 화를 초래한 것은 이미 불법 다운로드로 인한 음반시장 붕괴 때 겪었던 일이다.
가요 시장은 이미 대형 기획사의 독점 및 한 장르로의 지나친 쏠림 현상으로 많은 부작용을 겪고 있다. 여기에 방송국까지 나서서 음원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가요계 병폐는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물론 '나는 가수다'의 음원 서비스가 초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요제작자들의 우려는 '호들갑'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성공 모델이 '위대한 탄생'으로, '슈퍼스타K3'로, 다른 방송국의 예능프로그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면 초기에 문제를 제기할 필요성도 있다.
한 가요관계자는 "아무리 음원 제작이 쉬워졌다지만, 서바이벌이고 오디션이라면서 1등 뿐 아니라 출연자가 죄다 음원을 풀어놓으니 당황스럽다"면서 "'나는 가수다'나 '위대한 탄생' 출연자들이 방송이 끝난 후 신곡을 내서 1위를 휩쓸고 공연을 매진시킨다면 너무나 좋은 일이다. 그렇게 되길 바란다. 그러나 방송 도중 선보인 노래를 계속 시장에 내놓는 게 과연 가요계 발전에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가요의 방송 종속 강화를 우려하는 시선도 잇따르고 있다. 탁현민 문화평론가는 1일 MBC '백분토론'에서 "세계 어디에도 방송국이 그 나라에서 제일 인기 많은 가수 10팀을 동시에 부를 수 있는 권력을 가진 나라는 없다"면서 "방송국이 오디션 프로그램까지 만들게 되면서, 또 다른 방송 종속을 낳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앞서 음악평론가 김작가도 OSEN과의 전화통화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는 기존 아이돌 음악에 대한 대중의 피로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순기능도 많다"면서도 "그러나 기획의도와 다른 비지니스가 동반된다면 문제가 다르다. 가수들에게는 앞으로 방송국의 노예가 되느냐, 독자적으로 가난한 길을 가느냐 하는 단 두가지의 길만 남은 것 같다"고 진단했다.
rinn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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