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병을 이용하는 우리 가족들의 이야기다. 좀 피곤한 날이다. 아이 보기도 싫고, 빨래를 널거나 쓰레기를 버리기도 귀찮은 날이다. 아빠이며 가장인 나에게 이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꼭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어느 날에는 정말 하기 싫을 때가 있다.
그런 날에는 안 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당한' 이유가 그리 많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인상을 쓰며 한마디 한다.
"나 아파!"

무심코 내뱉은 말인데 이 마술 같은 언어 한마디에 여러 가지 마법이 일어난다. 일을 안 해도 되는 것이다. 더구나 시키지도 않는다. 그리고 반찬도 바뀐다. 저녁 메뉴가 김치볶음밥에서 삼계탕으로 바뀌는 것이다.
누워있어도, 스타킹에 꽂혀도, 아무 말 없다. 심지어 종일 아이들과 씨름하며 살림에 고되었을 아내는 나를 주물러주기까지 한다. 세상에 이런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는 날도 있는 것이다.
큰 아이가 학교 가기 싫은 것 같다. 아침 식탁에 앉아 밥투정을 한다. 그리고 아이도 마법 한마디를 내뱉는다.
"나 머리 아파!"
그 한마디에 밥을 안 먹어도 된다. 이빨을 안 닦아도 된다. 심지어 학교까지 안 가도 된다.
퇴근 후 집에 들어서는데 집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아내의 얼굴도 예사롭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아내가 한마디 내뱉는다.
"나 아파."
저녁밥이 없다. 아기는 내가 혼자 돌본다. 주변에서 많이 경험했던, 어쩌면 누군가 한 번쯤은 경험했던 대화들이다.
우리 삶에서 병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병으로 우리는 참 많은 구원을 얻는다. 알면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말이다. 필자는 병의 존재의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 보았다.
첫 번째는 알람 기능이다. 피곤하거나 몸의 어디가 고장 나거나 너무 무리할 경우 통증으로 가르쳐 준다, 더 이상 힘들다고 경고를 한다.
두 번째는 휴식기능이다.
더 하면, 아파서 쉬게 만든다, 다리를 삐면 깁스를 해준다. 통증으로 아파서 못 걷는다. 쉴 수밖에 없다.
세 번째는 병은 살아온 결과를 반영해주는 정직한 삶의 성적표다
이렇듯 병은 충분히 존재의 이유가 있다.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을 해본다.
1. 우울증으로 내가 힘든 것은 무엇인가?
2. 우울증으로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자하연한의원 임형택 박사 (경희대 한의예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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