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자꾸  게이 말투가…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1.04.04 16: 24

- 연극·뮤지컬·영화…‘멀티 배우’ 정성화
동성애 캐릭터에 흠뻑 일상생활까지 영향
출발은 개그맨…배우 전업해 뮤지컬 대상

연기란? “성실함이다 연습에서 무대에서”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막이 오르고 한껏 치장을 한 남성 동성애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객석이 잠시 술렁인다. 허공을 응시하는 은근한 눈빛, 무대 위를 바쁘게 오가는 발걸음, 수다스럽게 떠들어대는 입가와 목덜미를 오르내리는 손짓. 그 남자는 여자였다. 갇힌 감방에서 절박한 사랑을 사이에 두고 사회주의 혁명가와 마주한 남성 동성애자 ‘몰리나’. 배우 정성화(36)의 출현은 예사롭지 않았다. 정성화의 역할은 캐스팅 당시부터 화제였다. 뮤지컬로 승승장구를 하던 그가 8년여만에 연극으로 갈아탄 것도 얘깃거리였고, ‘예쁘지 않은 듬직한 외모가 오히려 무기’라며 미리 선수쳤던 동성애자 역할도 주목됐다. 지난 주 30일 여느 날처럼 공연을 앞두고 마음이 바쁜 그를 만났다. 배우 정성화. 그의 아우라에서 1994년 SBS 공채 개그맨으로 선발됐을 때의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 훨훨 나는 그를 보며 그가 개그맨일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격해 마지않는 것은 차라리 객석이었다.
 
▲8년만의 동성애자 연기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배우 정성화가 2003년 연극 ‘아일랜드’ 이후 8년만에 다시 연극무대에 오른 작품이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동성애자를 연기한다. 장안에 화제가 되고 있다는 말로 운을 뗐다. “실감이 안 난다. 시행착오를 숱하게 겪었는데도 순위에 들어있어 신기할 뿐이다.” 그가 연기하는 ‘몰리나’는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화려한 사랑을 꿈꾸는 남성 동성애자다. 1970년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감옥 안. 그는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돼 있다. 한 공간 안에 갇혀 있는 또 다른 수감자인 냉철한 반정부주의자로 인해 ‘싸구려 감상주의적’인 그의 사랑 연기는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기대치는 있었다”
단 두 명의 배우만이 온전히 무대를 끌어가는 2인극에 얹힌 게이 캐릭터. 어느 배우라도 섣불리 덤벼들기 쉽지 않았을 역할이다. 성공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기대치는 있었다”며 말끝을 흘렸다. “남녀를 떠나서 사랑이란 주제로 감동을 주는 것에는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대상이든 아우를 수 있는 사랑이 외면 받지는 않을 것이란 데 대한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는 얘기다. “몰리나는 여성보다 더 여성스러운 인물이다. 여자보다 훨씬 더 토라지고 감정에 소외당하면 더 섭섭해 한다.” 그의 말처럼 정성화는 극중 온전히 여성으로 체화했다. 말투, 손짓, 몸짓, 눈빛, 그리고 “우리 여자들은…”이란 대사의 잦은 반복조차 그만의 것이 된 것처럼 여겨진다.
 
▲일상에 튀어나오는 여성성
하지만 지극히 남성적인 외모를 가진 그가 여성으로 변신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사랑을 하고 있는 여자로 탈바꿈하는 데 굳이 여성스러운 외모가 우선일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차라리 여성성을 갖추는 데 공을 들였다. “반드시 예쁠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외모 때문에 내가 도전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 노력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성정체성(?)의 의심이 들만큼 그의 여성성은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술자리에서건 누구를 만나는 자리에서건 극중 말투와 손짓은 그의 이성적 영역을 넘어서 수시로 튀어나왔다.
 
▲흉내내기보다 연구를 한다
아르헨티나 반체제 작가 마누엘 푸익의 1976년 발표된 장편소설을 무대에 올린 ‘거미여인의 키스’에는 극단의 세 영역이 공존한다. 철저히 닫힌 공간인 감옥과 사회주의 혁명가, 그리고 동성애자. 어느 하나라도 놓치게 되면 작품은 표류하게 돼 있다. 극의 내용은 물론이고 2시간 가까이 한시도 쉬지 않는 긴 대사와 만만치 않은 캐릭터 분석까지 적잖이 그를 괴롭혔다. “몰리나는 대단히 힘들다”고 고충을 요약한 그는 텍스트보다는 실체에서 정보를 얻고자 “단순히 흉내내기보다 어떻게 그 인물이 될 것인가를 연구했다”고 말했다. 극중 인물을 빨리 털어버리는 성향이라고 하지만 이번 역할은 오래 남아 있을 것 같아 걱정이란 말도 덧붙인다. 우연찮은 ‘여성탐구생활’ 덕분에 이전에 모르던 여자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됐다. “결혼생활에 도움이 될 듯하다”며 썩 고무적이라고 웃는다. 그는 오는 18일 8년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영웅’의 안중근으로 정점
정성화가 출연한 영화 ‘위험한 상견례’가 지난주 개봉을 했다. “캐릭터가 잘 빠졌다”고 말하는 그는 핑크색을 좋아하고 순정만화에 빠져 있는 여린 부산 남자로 변신했다. 가히 전방위 활약을 펼치고 있는 그가 그래도 가장 마음이 가 있는 곳은 ‘뮤지컬’이라고 토로한다. 개그맨 딱지를 뗀 그가 난생처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은 공연도 뮤지컬이었다. 2004년 ‘아이러브유’로 그는 무대예술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연기를 해도 되겠다”는 안도감은 곧 이어 날개를 달았다. ‘올슉업’ ‘맨 오브 라만차’ ‘영웅’ ‘스팸어랏’ 등을 거치며 정성화는 명실공히 뮤지컬 스타배우로 우뚝 섰다. ‘영웅’의 안중근 역으로 받은 관심에 그의 반응은 “어리둥절”이다. 봇물 터지듯 상복이 터졌기 때문이다. 2010년 ‘제4회 더 뮤지컬어워즈’ 남우주연상, ‘제16회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에 이어 올해 ‘제2회 대한민국 서울문화예술대상’에서 뮤지컬배우 대상을 움켜쥐었다.
 
▲“배우에게 슬럼프가 뭔가”
실제 성격이 마냥 밝은 것은 아니다. “발랄하다”고 써달라는 건 말 그대로 그의 바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을 웃기는 일이 마냥 좋았다는 그가 개그맨이 된 것은 “연기를 하면서도 웃길 수 있구나”라는 자각이 생기면서다. 하지만 그에게 어려웠던 과정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02년 즈음 출연하자는 섭외가 도통 오지 않아 1여년 간 쉴 때였다. 집안에 전기가 끊어지는 경험을 그때 처음 했다. 그 외에는 일사천리라고 해도 될 듯하다. 슬럼프가 없었느냐는 질문에 “배우에게 슬럼프는 어떤 것이냐”며 순진하게 되물었다. 대답한 순간 치밀한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면 퍽 다행스러운 시간들이었다.
 
▲성실하게 도전하는 악역
연기에서 정성화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막힘없이 대답을 해오던 그가 “신중하게 말해야 할 것 같다”며 잠시 머뭇거린다. 이윽고 나온 대답은 성실. “성실이 맞는 거 같다. 연습과정도 그렇고 매회 공연을 대하는 자세로 볼 때도 그렇다.” 그 성실한 자세로 이제는 악역에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단다. ‘정성화가 출연하는 작품이라면 정성화가 하는 연기라면’을 내걸 만큼 객석의 무한한 신뢰를 만들어나가는 것. 배우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한 끝까지 품고 나가야 할 숙제라고 그는 고백한다.
euanoh@ieve.kr /osenlife@osen.co.kr
<사진1> 
개그맨이든 영화배우든, 뮤지컬배우든 연극배우든 “수식은 그리 중요치 않다”고 말하는 정성화는 어느덧 배우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돌아섰다. 무엇으로 몸을 덧씌웠느냐가 중요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가 어느 장르에서 살아남을 것인가도 그리 중요치 않다. “늘 새로운 발견”이라 말하는 그의 도전 아래 그 구분은 아주 사소한 일이 된다.
<사진2>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의 한 장면. 정성화는 이 작품에서 노래가 빠진 연기로만 승부수를 던지며, 한 동성애자가 살아남기 위한 도구로 선택한 사랑을 온몸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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