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연속 준플레이오프 진출을 넘어 플레이오프, 그 이상을 노리는 팀의 전임 감독 색깔 벗기의 노력을 알 수 있었다. 4년 만에 번트를 시도한 강민호(26. 롯데 자이언츠)의 플레이는 단순한 번트 시도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지난 12일 사직 두산전 9회 무사 1,2루 상황. 3-4로 뒤지고 있던 롯데는 이날 5번 타자로 나선 강민호에게 번트를 지시했다. 강민호의 번트 시도는 지난 2007시즌 이후 처음. 입단 초기 4년 간 41개의 희생번트를 성공했던 강민호는 제리 로이스터 감독 시절에는 단 한 번도 번트를 시도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로이스터 감독은 3~6번 타순에 웬만해서는 번트를 지시하지 않는 지도자였다. 좋은 배팅 파워를 지닌 타자의 강공을 즐기는 감독이었던 만큼 강민호는 무사 찬스 상황서도 강공 스윙을 해왔다.
그러나 12일 만큼은 달랐다. 양승호 감독은 무사 1,2루 상황서 일단 한 점을 뽑는 것이 목표였던 만큼 지난 3시즌 동안 번트가 없었던 강민호에게 번트를 지시했다. 초구 번트 파울을 기록한 강민호는 결국 2구 째 번트 시도가 실패한 뒤 2루 주자 이인구의 협살을 타석에서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본인은 임태훈에게 삼진으로 물러나 결과적으로 실패한 책략이 되고 말았다.
의미를 부여할 부분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로이스터 감독 시절 롯데는 희생번트를 즐기지 않는 팀이었다. 시즌 별 희생번트 10걸 내 롯데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2009시즌에는 박기혁(14개) 정도만이 보내기 번트를 자주 시도했으며 2008년에도 이승화(13개) 외에는 눈에 띄는 번트 구사자가 보이지 않았다. 로이스터 감독은 번트보다 강공을 중시했다.
그러나 양 감독은 박빙으로 뒤지고 있는 상황서 5번 타자에게 번트를 지시했다. 지난 3년 간 번트를 대지 않았으나 양상문-강병철 감독 시절에는 41번의 희생번트를 성공시켰던 강민호를 믿었고 후속 타자 전준우와 문규현의 컨택 능력에도 신뢰를 보낸 것.
이날 시즌 첫 중견수로 선발 출장한 전준우는 5타수 2안타를 기록하는 동시에 7회 포수 파울플라이를 기록하면서도 4개의 파울커트로 마운드의 정재훈을 고전하게 했다. 손목을 이용한 컨택 능력이 돋보였던 만큼 전준우를 이용한 역전을 노렸던 것.
문규현 또한 양 감독이 "팀의 조커"라고 손꼽을 만큼 기량 성장세가 컸던 내야수. 그저 가정에 불과하지만 강민호가 번트에 성공했더라면 롯데는 1사 2,3루에서 전준우가 고의볼넷으로 출루했다고 해도 문규현의 스윙으로 더 나은 결과를 얻었을 수 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는 점은 그저 결과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특히 로이스터 감독 시절 3년 간 상위팀으로 자리를 굳히면서도 '작전 야구 면에서 떨어지는 편'이라는 평을 받았던 롯데. 4년 만에 번트를 시도한 강민호의 12일 9회말은 그저 번트 실패만이 아닌 팀 컬러 변화의 한 과정이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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