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 다녀왔죠".
17일 광주구장. 전날 KIA를 4-3으로 꺾고 7연패에서 탈출한 한화 덕아웃은 한층 밝아져 있었다. 7연패 기간 동안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덕아웃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역시 승리만큼 좋은 보약이 없었다. 특히 주장 신경현(36)의 표정이 밝았다. 전날 번트 실패로 마음의 짐이 컸지만 팀 승리로 모든 걸 훌훌 털어낼 수 있었다. 경기 후 그는 "지옥에 다녀왔다"는 한마디로 마음고생을 대변했다.
정말 어렵게 따낸 승리였다. 8회 마무리 오넬리 페레즈가 블론세이브를 저질러 동점이 됐고, 9회에도 무사 2루에서 작전 미스로 2사 주자없는 상황이 되는 등 악재가 많았다. 강동우의 극적인 3루타로 9회초 결승점을 얻었지만, 9회말 이 1점을 지키는 것도 힘겨웠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1점을 지켰고, 한화 선수들은 10일 8경기 만에 거둔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9회 천신만고 끝에 얻은 1점을 9회말 지키는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9회 오넬리가 선두타자 안치홍에게 중전 안타를 맞았다. 김상훈의 희생번트로 1사 2루. 이종범을 삼진으로 잡아 2사 2루가 됐으나 상대해야 할 타자가 이용규였다. 그때 한대화 감독은 마운드로 올라갔다. 통역원을 대동한 한 감독과 오넬리-신경현 배터리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한 감독은 고의4구를 지시했다. 신경현은 "역전 주자까지 나가는데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은 뒤 1~2구는 유인구로 승부해서 속지 않으면 거르자는 의견을 냈다. 그러자 한 감독은 "고의4구로 걸러라"고 지시한 뒤 마운드를 내려갔다. 한 감독은 "우리도 남은 투수가 없었고 어떻게든 승부를 봐야 할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신경현은 "연장을 가도 KIA 불펜투수들이 많이 나와 승산있다고 봤다. 김선빈에게 맞으면 타격감이 좋은 (이)범호에게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승부를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었다"며 전날 상황을 복기했다.
하지만 한 감독의 결단으로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용규를 고의4구로 보내며 2사 1·3루가 됐다. 역전 주자까지 나간 부담스런 상황에서 오넬리-신경현 배터리는 김선빈을 우익수 뜬공으로 처리하며 경기를 매조지했다. 신경현은 "실수한 것도 있고 해서 긴장을 조금 했다"며 "역시 감독님 생각이 옳았다. 내 의견대로 해 결과가 좋지 않았으면 어떻게 될 뻔했나. 역시 감독님은 대단하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때 신경현을 옆을 지나가던 한 감독은 꿀밤 한 대를 쥐어박으려 했다. 주장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만 분위기는 참 훈훈했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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