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민의 베이스볼 다이어리]이대호와 홍성흔이 팬들에게 드리는 '간절한' 부탁
OSEN 박광민 기자
발행 2011.04.18 07: 04

여러분, 한국을 대표하는 타자를 꼽으시라면 여러분들께서는 누구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저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지난해 9경기 연속 홈런포와 전무후무한 타격 7관왕을 차지한 '빅보이'이대호(29, 롯데 자이언츠)를 1라운드에 지명할 것 같아요.
그 다음으로는 항상 즐겁고 팬들이 원하면 뭐든지 다 하는 홍성흔(34, 롯데 자이언츠)을 선택하고 싶고요. 특히 지난해 대구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턱에 긴 수염을 차고 타석에 들어서서 홈런을 치는 모습이 제 기억 속에 생생한데요.

그런데 요즘 이대호와 홍성흔에게 고민이 있다고 합니다. 롯데가 최근 4연패의 늪에 빠졌다가 17일 잠실 LG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모처럼 만에 환하게 웃었는데요.
이날 경기에서 이대호는 5타수 3안타, 특히 팀이 1-1로 동점이던 5회 역전 적시타를 쳤습니다. 홍성흔 선수는 4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는데요. 대신 홍성흔 선수는 2루에 정확한 송구로 박경수를 잡아내는 모습을 보였죠.
특히 홍성흔은 "팀이 연패를 당하면서 요즘 팬들로부터 욕을 많이 먹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까지는 지명타자라서 수비에 나갈 일이 없었지만 올 시즌 좌익수로 출장하면서 수비 때마다 팬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지난주에는 팬들로부터 약간의 모욕적인 말까지 들었다고 하는데요. 좌익수로 수비를 하던 홍성흔은 "성흔아"라고 부르는 팬을 쳐다봤다고 합니다. 보통 때에는 잘 안쳐다 보는데 계속해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통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팬은 "뭘봐, 이 XX야. 보란다고 진짜 보냐"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홍성흔은 약간의 충격을 먹고 팀 동료인 김주찬에게 고충을 토로했더니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뭘 던지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홍성흔의 이야기를 들은 양승호 롯데 감독도 "우리 때는 그건 약과였다"면서 "욕은 아무것도 아니다. 먹다 남은 라면 국물에, 투수들에게는 새총도 많이 쐈다. 경기 끝나면 마운드 위에 돌이 수북 했다"는 전래동화같은 말도 했습니다.
시범경기 때 저는 잠실 야구장에서 응원하는 초등학생 4명을 봤습니다. 부모님 말고 친구들끼리 4명이 왔는데요. 그런데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투수가 견제구를 던지니까 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욕을 했습니다.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더라고요. 이건 뭔가 싶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프로야구는 급격한 발전을 이루며 지난해 정규시즌 관중만 592만명이었고요. 포스트시즌까지하면 600만명이 훌쩍 넘었죠. 올 시즌 KBO 목표는 633만명인데요.
그런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한국야구의 응원 문화가 한 단계 성숙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특히 홍성흔이 야구장을 찾은 팬들에게 구구절절한 부탁 멘트를 남겼습니다. 17일 잠실에서 만났는데요. 그는 "예전보다 관중 문화 많이 좋아졌다. 외야에 나갔을 때 뭐를 던진다거나 하는 것은 많이 자제가 됐다. 그러나 지고 있으면 상대 팀이건, 홈 팀이건 욕을 하시는 분들이 조금 있다. 술을 드신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신다. 술 안 드신 분들은 그런 말 안 한다. 술도 기분 좋게 마시고, 지고 있더라도 이제는 다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욕보다는 격려의 말이 하시면 죄책감도 들고 힘도 난다. 이런 부분들이 잘 이뤄져야 프로야구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최근에 무조건 고개 숙이고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면  '뭘봐, 임마'이런 말을 들었다. 동물원의 동물 취급하지 않고 가족같이 해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돈 내고 와서 보니까 너희들은 잘 해야 되고, 이런 관념보다는 정말 자기 자식 키운다는 생각으로 자기 팀을 키운다는 마음으로 한다면, 관중 문화도 성숙되고, 선수들도 더 신나서 야구를 할 것 같다"고 부탁했습니다.
이대호는 경기장에서만 욕을 먹은 것이 아니죠. 그는 영화 '해운대'에서도 술 취한 관객으로 등장한 설경구에게 욕을 한 바가지 먹었던 거 기억하시죠. 우리는 재미있다고 봤는데 욕을 먹은 이대호는 "영화를 찍는 것을 알았지만 욕을 먹으니까 화가 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 말(심한 욕)은 이제 진짜 삼가 하셨으면 좋겠다. 솔직히 그거는 한 사람을 모독하는 행위다. 칼만 안 들었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좀 자제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어차피 야구장에 즐기려 오신 거니까 우리도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려고 한다. 그런데 우리도 사람이다 보니까 안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때가 있다. 안 될 때는 더 응원을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다. 저희 응원하러 오셨다가 욕만 하시다 가는 것밖에 안 된다. 야구 이기든, 지든 편안하게 즐기다 가셨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대호는 또 "어느 누구든지 야구장에서 최선을 안 하는 선수는 없다. 열심히 해서 이기려고 한다. 저희도 답답한데 팬들께서 그러시면 저희는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희를 믿고 응원해 주셔야 저희 더 힘을 내서 할 텐데. 야구도 안 되는데다가 팬들까지 그러시면 더 힘들어진다. 좀 더 즐겁게 응원하시고 좋은 말씀 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팬들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웃나라 일본의 응원 문화는 어떨까요? 궁금해서 일본 야구 관계자와 통화를 했습니다. 그는 "일본의 경우도 아주 가끔 술 취한 관중들 중에서 '이, 바보야', '감독 물러나라''라고 욕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본에서는 선수들에게 욕을 하는 것을 곁에 있는 다른 관중이 이해를 못한다"면서 "한국야구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부분이다"고 조언했습니다.
올 시즌에도 분명히 많은 분들이 경기장을 찾고 계십니다. 매일 매일 흥미진진한 경기들이 팬들을 야구장으로 불러 모으고 있는데요.
무엇보다도 이번 홍성흔과 이대호의 간곡한 부탁을 통해서 한국야구의 관중 문화가 한 단계 성숙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agassi@osen.co.kr
화보로 보는 뉴스,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OSEN 포토뉴스’ ☞ 앱 다운 바로가기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