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는 전통적으로 강력한 마무리 투수가 없었다. 롯데 출신 구원왕은 2009년 존 애킨스가 유일했고, 한 시즌 최다 세이브는 1991년 박동희가 기록한 31개였다. 지난해까지 롯데는 통산 팀 세이브가 611개로 원년 구단들은 물론 늦게 창단한 한화와 현대보다도 적었다. 올해도 롯데는 13경기 만에 첫 세이브를 기록했는데 8개 구단 중 세이브가 가장 늦게 나왔다. 그런데 그 의미있는 세이브를 장식한 투수가 바로 '이적생' 고원준(21)이었다. 고원준의 생애 첫 세이브이기도 했다.
고원준이 롯데 마무리의 해답이 되고 있다. 고원준은 지난 19일 대전 한화전에서 8회 2사 1·2루 위기에서 구원등판했다. 2-2 팽팽한 동점에서 양승호 감독은 불과 이틀 전 잠실 LG전에서 3⅓이닝 동안 47개의 공을 던지며 팀에 첫 세이브를 선사한 고원준을 마운드에 올렸다. 지칠 법도 하지만 고원준은 씩씩했다. 아니 완벽했다. 8회 대타 이양기를 3루 땅볼로 솎아내며 위기에서 탈출한 이후 11회까지 9타자를 퍼펙트로 처리했다. 3⅓이닝 동안 탈삼진 4개를 곁들인 퍼펙트 피칭.
이로써 고원준은 시즌 초반이지만 구원투수로는 드물게 규정이닝에도 이름을 올렸다. 더욱 놀라운 건 아직 실점이 없다는 것이다. 시즌 개막 이후 고원준은 무실점 행진을 벌이고 있다. 8경기에서 14⅔이닝을 던지며 피안타 7개와 볼넷 4개를 줬을 뿐 탈삼진만 무려 15개나 솎아냈다. 피안타율 1할3푼7리,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 0.75, 9이닝당 탈삼진 9.2개라는 아주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양승호 감독은 고원준을 장차 롯데 마무리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양 감독은 "나이는 20살인데 속은 40살이다. 아주 능글능글하다"며 고원준의 타고난 천성을 높이 샀다. 그 예로 지난 17일 잠실 LG전을 들었다. 양 감독은 "원래 9회 원아웃만 잡으면 내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포수 실책으로 무사 1·2루가 돼 어떻게 하는가 봤다. 그런 상황을 이겨내야 성장한다"고 했다. 고원준은 후속 타자 오지환을 2-3 풀카운트에서 가운데 직구로 삼진 처리했다. 양 감독은 "그 장면을 보고 '네가 해결하라' 하고 끝까지 놔뒀다"고 설명했다.
배짱은 마무리투수가 갖춰야 할 필수요소다. 오지환을 삼진으로 처리한 그 장면은 고원준의 배포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양 감독은 "그런 배짱은 쉽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어린 선수지만 마운드에서 어떤 상황에도 도망가지 않고 자기 공을 던지는 게 마음에 든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고원준을 장차 마무리로 키우겠다는 의사를 확고히 했다. "처음부터 고원준을 보고는 마무리투수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무리투수는 팀에서 만들어야 한다. 자체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 양 감독의 지론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고정 마무리로 기용되지 않을 전망이다. 양 감독은 "진필중 정재훈 오승환도 불펜에서 어느 정도 경험을 쌓은 뒤 마무리로 성공했다. 불펜에서 위기 상황을 겪어 보면서 마무리로 키워나가야 한다"며 "구위만 보면 고원준이 낫지만 경험이나 컨트롤은 김사율이 조금 더 낫다"고 말했다. 당분간 고원준은 불펜의 핵심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상황에 따라 언제든 등판할 수 있는 전천후 투수로 기용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고원준의 구위는 완벽하다. 그러나 이 구위가 언제까지 유지되느냐는 코칭스태프의 관리에 달려있다. 지난 8일간 고원준은 4경기에 나와 11이닝을 소화하며 투구수 148개를 기록했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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