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모던포크~아이돌
국내 대중음악 비평과 추천
결국, 음악

나도원|468쪽|북노마드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 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로 읊조리던 그리움을 기억하는가. ‘광화문연가’에선 삶의 한 부분이 베어져 저만치 떠내려간다. 상실을 말하지만 감정과잉에 허우적대지는 않았다. 그 세월은 다시 흘러 담담한 회상 속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 내 맘에 고독이 너무 흘러넘쳐”(‘옛사랑’). 그리고 이젠 이조차도 잔잔해진 체념 같은 자기 설득만 남았다. “거리에 오가는 사람 중에 우릴 보고서 이해할 사람 있을까…슬프게 살다보면 슬픈 것도 모르게 되는지”(‘그해 겨울’).
1980년대 중후반은 국가폭력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동시에 한국 대중음악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1985년과 1986년 두 해 사이에만 들국화, 어떤날, 시인과 촌장, 김현식, 부활, 시나위 등의 대표작들이 쏟아져 나왔고, 봄여름가을겨울과 신촌블루스, 동물원이 곧 뒤를 이었다. 이영훈과 이문세는 그 복판에서 만났다. 이영훈은 통속적이라거나 상업적이라는 말로 격하되지 않을 ‘격이 있는 사랑 노래’를 썼다. 그렇게 “이문세는 좋은 작곡가와 빼어난 노래를 만남으로써 좋은 가수가 될 수 있었고, 이영훈 또한 자신의 페르소나를 얻었다.”
한국식 발라드가 시작된 1980년대부터 현재의 아이돌까지 한국 대중음악에 켜켜이 쌓인 여러 겹을 풀어헤쳤다. 자유를 화두로 한국 모던포크의 시작을 알린 한대수에서 루저세대의 낭만적인 냉소를 끌어낸 장기하로 한 축을 이었다. 다른 한 축은 주류무대를 장악한 걸그룹과 음악성과 진정성을 갖춘 홍대 인디밴드 사이에 세웠다.
신세대 대변인에서 문화대통령으로까지 격상된 서태지 신화의 탄생에는 오해가 있다. 실험과 새로운 장르를 내세워 우위를 점했던 서태지는 정작 아무데도 없었다는 것이다. 서태지의 음악적 업적을 부각시키기 위해 그 이전의 음악계는 필연적으로 폄하돼야 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그 일은 신비의 장막을 그에게 덧씌운 마케팅이 담당했다. 그리고 그를 ‘섬’으로 만들었다.
대리만족의 쾌감을 선사했다가 지금은 어딘가로 부유하는 서태지와는 달리 장기하는 비현실적인 유머와 공감을 매개로 하여 떠올랐다. 그의 무표정과 극단적인 진지함은 종종 코믹으로 연결되고, 때마침 불어온 루저 유행은 딱 떨어지는 그만의 브랜드가 됐다.
삶을 노래하는 두 방식으로 나뉘는 안치환과 이승철, 보컬리스트에서 아티스트로 거듭나고 있는 박선주, 한국에서 젊은 작곡가로 사는 법을 제시한 유희열을 살폈다. 하지만 책이 보다 집중한 것은 주류음악에 떠밀려 제대로 된 의미찾기에 소홀했던 인디음악이다. 플라스틱 피플, 비둘기 우유, 스왈로우, 휘루, 럭스, 할로우 잰,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등 자기 색깔의 음악을 실천하는 이들이야말로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이 거둔 소중한 열매라고 힘을 실어준다. 대신 화려한 아이돌 부활에 대한 비평은 신랄하다. 짧은 기간 불쑥 커졌지만 더 빨리 잊힐 수 있는 소녀시대는 성공원인이 퇴보원인이어서 시작에 종말이 내포돼 있다고 정리했다.
유행이란 이름으로 공감대를 만들어갔던 한 시대를 또렷하게 되살렸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음악은 나를 남기고 싶은 근원적 욕망 때문에 만들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덕분에 그 수혜를 입게 된 우리네 삶은 거친 변화와 성장, 성숙을 거쳐낸 음악으로 ‘결국’ 남게 됐다는 얘기다.
euanoh@ieve.kr /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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