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문 500승'에 숨어있는 두산 변화상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1.04.23 20: 09

감독 재임 8년 째 역대 통산 500승. 패권을 잡지는 못했지만 매 시즌 승률 5할 이상을 기록하며 두산 베어스를 포스트시즌 단골 진출팀으로 견인한 김경문 감독의 500승. 100승 단위 발자취는 그간 팀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와 당시 상황을 설명해준다.
 
김 감독은 23일 대전 한화전서 최준석의 결승 만루포와 5이닝 2실점투를 보여준 좌완 선발 이현승의 활약에 힘입어 7-3으로 승리를 거두며 통산 500승(15무 405패)째를 올렸다. 1990년 9월 18일 빙그레 김영덕 감독이 인천 태평양(DH1)전에서 최초로 기록한 이래 8명의 감독이 밟은 고지다.

 
2004년 김인식 감독의 뒤를 이어 두산의 사령탑이 된 김 감독은 데뷔 2번째 경기인 지난 2004년 4월 5일 잠실 KIA전에서 첫 승을 시작으로 2005년 6월 1일 잠실 현대전 100승, 2006년 9월 24일 잠실 LG전서 200승, 2008년 5월 22일 잠실 한화전서 300승, 2009년 8월 8일 잠실 LG전에서 400승을 거뒀다.
 
 
 
눈여겨 볼 만한 점은 당시 경기 결승타의 주인공, 승리투수를 떠올려보면 '김경문호'가 어떤 길을 걸었고 당시 감독이 팀을 어떻게 이끌어왔는지 알 수 있게 한다. 2005년 6월 1일 잠실 현대전 당시 결승타의 주인공은 강봉규(삼성)였으며 승리 투수는 당시 신인이던 김명제(임의탈퇴)였다.
 
2005시즌에 앞서 두산은 2004년 후반기 프로야구를 뒤흔들었던 병풍 직격탄을 맞아 최약체로 분류되었던 팀이다. 그러나 그들은 걸출한 스타 플레이어들이 팀을 떠난 상태에서도 예상치 못했던 선수들의 활약을 앞세워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성공했다. 강봉규는 당시 최경환(KIA 코치)에 밀려 백업 좌익수 신세였으나 김 감독의 100승 경기 결승타를 때려냈다. 백업 요원도 쏠쏠했던 두산의 당시를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계약금 6억의 신인이던 김명제는 그 해 선발-계투를 오가며 7승을 올렸다. 비록 지금은 음주 교통사고로 인해 선수생활 재개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지만 적어도 그가 2005년 선발진의 영건으로 활약하며 투수진의 새로운 피가 되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 그 외에도 이재우가 28홀드로 홀드왕 타이틀, 정재훈이 30세이브로 구원왕좌에 올랐다. KIA서 이적한 외국인 우완 다니엘 리오스의 15승 활약도 있었으나 당시 두산은 명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선수들이 나래를 펼치며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은 팀이었다.
 
 
 
2006년 9월 24일 잠실 LG전서는 안경현(SBS 해설위원)이 결승타를, 좌완 이혜천이 승리를 거뒀다. 2006시즌 두산은 주포 김동주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아시아예선 대만전서 어깨 부상을 당하며 치명타를 입었으나 KIA와의 4강 경쟁을 치열하게 이끌었던 바 있다.
 
그 해 제 자리였던 2루를 고영민에게 물려주고 본격적인 1루수로 제2의 야구인생을 열었던 안경현은 2할8푼4리 15홈런 70타점으로 분전했고 이혜천 또한 본격적인 좌완 선발로 8승 6패 평균자책점 2.79의 성적표를 남겼다. 비록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으나 주포 공백 속 분투한 선수들의 활약상을 높이 살 수 있었던 한 해였다.
 
 
 
2008년 5월 22일 잠실 한화전 승리 때는 이재우가 승리 투수가 되었으며 포수 자리 대신 타격 전념에 나섰던 홍성흔(롯데)이 결승타를 때려냈다. 당시 공익근무를 마치고 팀에 합류한 이재우는 그 해 11승을 올리며 팀 내 최다승 투수가 되었다. 그 속에는 2007년 22승으로 MVP 및 골든글러버가 되었던 리오스의 일본 이적, 맷 랜들의 구위 저하. 그리고 해외파 김선우가 어깨 및 무릎 부상으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임으로 인한 선발진 약화를 알 수 있었다. 계투 요원의 팀 내 최다승이 보여준 또 하나의 단면이었다.
 
또한 홍성흔은 2007시즌이 끝난 후 포수직 포기와 관련해 트레이드를 요구하다 전지훈련에 참가하지 못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홍성흔은 그 해 3할3푼1리로 타격 2위에 오르며 타자로서 기량이 뛰어나다는 점을 증명한 뒤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어 롯데로 이적했다. 그 해 두산은 채상병(삼성)을 주전 포수로, 김 감독의 300승 후 얼마 지나지 않아 LG서 최승환을 영입해 포수진을 꾸렸다. 안방마님의 본격적인 교체가 이뤄졌던 2008시즌이다.
 
 
2009년 8월 8일 잠실 LG전은 김현수가 결승타, 좌완 금민철(넥센)이 승리투수가 되었다. 2008시즌 3할5푼7리로 타격왕이 되며 '연습생 신화'의 주인공이 된 동시에 '화수분 야구'의 주역 중 한 명으로 떠올랐던 김현수는 그 해 3할5푼7리 24홈런 104타점을 기록하며 국내 최고 좌타자 중 한 명으로 우뚝 섰다. 타선의 중심축이 '두목곰' 김동주에서 조금씩 김현수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시기다.
 
좌완 금민철은 그 해 7승으로 커리어하이 성적을 올린 동시에 포스트시즌서 1선발 노릇을 했다. 이는 당시 히어로즈의 시선을 사로잡아 12월 30일 이현승 트레이드서 네임밸류가 크게 기울지 않는 선수 거래를 이끌었다. 구속이 빠르지는 않지만 매력적인 커터와 슬로커브를 지닌 금민철은 현재 넥센 선발진의 한 축이다.
 
 
그리고 500승 장면. 두산 선수단은 3회 최준석의 선제 결승 만루포, 그리고 2009년 12월 30일 금민철과 현금 10억원을 주고 데려온 이현승의 5이닝 6피안타(탈삼진 5개) 2실점 선발승을 앞세워 김 감독에게 500승 째를 선사했다. 똑같이 1983년생인 최준석과 이현승은 본격적인 야구 기량의 절정기를 맞았지만 올 시즌을 마치고 병역 의무를 소화할 예정이다.
 
당초 2010시즌 후 군입대가 예상되었던 최준석과 이현승은 군입대를 1년 미루고 팀 우승을 향해 올인했다. 지난 7년 간 2006년을 제외한 6시즌 플레이오프 진출 및 3번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기록했으나 왕좌에 오르지 못했던 김 감독의 바람이 얼마나 절실한 지 알려주는 한 대목이다.
 
감독으로 8번째 시즌, 두 번의 재계약 과정을 거치며 한 팀에서 500승 째를 올린 김 감독. 500승을 올리는 과정은 그저 승수 적립이 아니다. 그 속에는 '김경문호'의 잇단 변화상이 숨어있다.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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