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72cm의 키에 52kg인 유선씨(가명)는 누가 봐도 세련되고 아름다운 20대 '엣지녀'였다. 수려한 이목구비와 훤칠한 몸매로 어린 시절부터 "연예인이 되라"는 소리를 많이 들은 유선씨의 꿈 역시 연예인이었다.
타고난 미모 때문에 항상 주위의 시선을 받았던 유선씨는 외모에 대해서 남다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유선씨가 중학교 3학년 말, 길거리 캐스팅이 되면서 그 날부터 유선씨는 연습생 신분이 되어 다가올 스타의 꿈을 키우게 된다. 처음 연습생이 되자 유선씨는 마치 톱스타가 된 듯 착각에 빠지게 되었다. 하루 빨리 데뷔를 해서 자신의 미모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 안달이 났던 것이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복병이 유선씨의 조급한 꿈에 찬물을 끼얹었다.
연기 지도 선생님은 유선씨에게 "연기자로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다"는 치명적인 말을 했다. 노래를 잘 하는 것도 아니었고 다른 끼와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 유선씨는 계속 연습생으로 남겨 두어야 할 형편이었다.

유선씨 입장에서는 생각이 달랐다. 자신은 유년 시절부터 한결 같이 연예인이 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외모 역시 출중하기 때문에 언제든 데뷔만 한다면 당장에 스타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스타의 꿈을 키우며 연습생으로 3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유선씨는 어렵게 진학한 정보고등학교 졸업을 맞게 된다. 친구들과 모여 졸업 파티를 하면서 유선씨는 갑자기 자신이 너무도 초라하다는 좌절감에 빠졌다. 친구들은 모두 대학 진학이나 다른 일들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있었지만 자신은 대학 진학은커녕 아직 연습생 신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울한 마음에 과음을 했던 유선씨는 집으로 돌아와 면도칼로 동맥을 끊는 자살 시도를 하게 된다. 일찍 발견이 되어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그 일이 있은 후 유선씨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작은 일에도 화를 냈고 매일 술에 절어 살았다.
어느 날, 유선씨는 소속사에 자신을 데뷔시켜주지 않는다고 강력히 반발하다 엄청난 소리를 듣게 되고 영원히 그녀의 가슴에 상처로 남았다. 뛰어난 미모로 당연히 최고의 스타가 될 것이라 믿었던 유선씨는 외모만으로는 스타가 될 수 없음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그 후 유선씨는 모든 삶에 희망을 잃게 되었다. 성년이 되었지만 연예인 외에 다른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유선씨의 목표는 갈팡질팡 표류하게 된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무능한 자신을 돌아보며 유선씨는 식음을 전폐하고 방에 틀어 박혀 인터넷 게임에만 몰두했다.
그런 유선씨를 볼 때마다 안타까웠던 부모님은 가능한 모든 것을 동원해 유선씨가 다시 희망을 찾아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도록 지원하려 했지만 이미 유선씨의 마음에는 열등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선씨의 대인기피증은 더욱 심해지고 가족들과 식사하는 것조차 하지 않게 되자 부모님의 걱정은 말 할 수 없이 깊어졌다.
심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던 유선씨에게는 삶의 희망을 찾는 동기가 필요했다. 필자는 상담을 통해 유선씨가 찾을 수 있는 새로운 삶의 희망을 주시하던 차 유선씨가 어학에 관심이 있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로지 외모에 대한 자신감으로 연예인이 되는 것만을 생각했던 유선씨에게도 희망적인 발견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에게 빛나는 외모 외에도 다른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유선씨의 회복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라졌다.
유선씨는 지금 완쾌되어 유학을 준비 중이다. 그 동안 등한시했던 공부를 하느라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잠을 자지 않는다는 유선씨가 치료 중에 내게 했던 말이 "선생님, 저는 엣지있게 살고 싶어요"였다.
필자는 유선씨에게 "엣지란 외모만을 칭하지 않고 삶을 통째로 놓고 보았을 때, 지금 미래를 향해 노력하고 있는 유선씨가 정말 엣지있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란 말을 해주고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길은 어느 순간 실없이 끝난 듯 보이지만 그렇다고 허탈해 하거나 맥 빠져 할 필요는 없다. 끝났다고 생각한 길에서 조금 방향만 전환한다면 여기가 곧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은 힘들지만 살아볼 만 한 것이다. /자하연한의원 임형택박사 (경희대 한의예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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