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장면이었다.
KIA 아퀼리노 로페즈가 4연승에 실패했지만 잘 던졌다. 지난 27일 광주 SK전에 선발등판해 7회까지 7개의 안타를 맞았지만 5개의 삼진을 솎아내며 2실점으로 막았다. 그때까지 팀 타선이 무득점으로 꽁꽁 묶이는 바람에 패전의 명에를 안았다.
그럼에도 개막 이후 4연속 퀼리티스타트 행진을 벌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김성근 감독도 경기에 앞서 현재 외국인 투수 가운데 가장 좋은 투수라는 칭찬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작년과는 완전히 다른 구위와 투구내용을 보여주어 전망을 밝게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로페즈의 흔들림이었다. 로페즈는 마운드에서 다혈질이다. 심판판정 혹은 수비실수가 나오면 금새 불같은 성격이 드러내고 무너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이날은 상대타자와 상대벤치의 움직임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5회초 1사후 최윤석이 2구 투구동작에 들어가자 타임을 걸고 타석에서 빠져나온 뒤 불편한 심기를 노출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최윤석의 머리 위로 볼을 던졌다.
곧바로 김성근 감독이 항의에 나섰다. 이후 로페즈는 투구리듬이 흔들려 잇따라 볼을 던지더니 최윤석에게 볼넷을 허용했다. 다음타자 정근우를 상대로 볼카운트 1-3까지 몰릴 정도였다. 정근우를 3루 땅볼로 잡았지만 이후 폭투로 만루위기까지 몰렸고 삼진으로 위기를 넘겼다. 크게 흔들렸지만 무너지지 않고 평정심을 찾은 것이다.
로페즈는 2009 한국시리즈에서 SK를 상대로 2승을 따내며 우승의 일등공신이었다. SK에게는 잠재적 경쟁자라고 볼 수 있는 투수이다. 아직 시즌 초반이고 앞으로도 중요한 일전에서 로페즈를 상대할 가능성이 높다. SK는 이날 경기를 통해 로페즈 공략의 실마리를 마련했을 수도 있다. 반대로 로페즈에게도 빈틈없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숙제를 안긴 한판이기도 했다.
sunn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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