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려원이 순박한 시골처녀 ‘설희’로 분했다. 그저 순수하기만 한 아가씨는 아니다. 이념 갈등, 전쟁의 공포에 당당히 맞서는 신여성이다. 동시에 정혼자와의 지고지순한 사랑 대신 운명처럼 찾아온 비극적 사랑을 택하는 가슴 뜨거운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매력적인 캐릭터를 그가 놓칠 리가 없다. 정려원은 그간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개성 강한 캐릭터를 소화해 냈다. 최근 촬영이 끝난 영화 ‘통증’에선 혈우병에 걸린 여자로, ‘김씨 표류기’에선 자신의 좁고 어두운 방을 온 지구이자 세상으로 여기며 방에 콕 쳐 박혀 인터넷으로만 세상과 소통하는 은둔형 외톨이로 변신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패셔니스타에서 1950년대 구수한 사투리의 시골처녀로 살 다 온 정려원을 만났다.

- ‘적과의 동침’은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의 작품인가.
▲ 내가 성장하는 면에서 유익했다. 많은 사람들과 어우러질 수 있었다. 현대가 아닌 다른 시대를 살아냈던 과정을 그린 영화였기에 유익했다.
- 이번 영화, 굉장히 힘들었을 거 같다.
▲ 작년에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누구보다 스태프들이 힘들었다. 그렇지만 힘든 촬영 덕분에 누가 배우이지, 스태프인지 모를 정도로 단단히 뭉치는 계기가 됐다.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머리가 알던 걸 이번 영화를 통해 온몸, 뼛속까지 알게 됐다. 해외 나가면 사람들이 친해진다는 말이 있듯 오지를 가니까 모두 가족이 되더라.
- 스태프들의 노고를 이해하게 됐다면, 직접 장비를 나르는 일도 도와줬나?
▲ 그것뿐이겠나. 영화에 나오는 커다란 방공호도 배우, 스태프들이 함께 판 거다. 영화가 점차 진행되면서 반공호도 더 깊숙이 파내려가 져야 하는데 비 때문에 쉽지 않았다. 그래도 감독, 스태프, 배우 모두 포기하지 않고 종국엔 모두 삽을 들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손에 가시가 박힐 정도로 열심히 팠다. 그래서 감독님께 말했다. 이 영화 ‘적과의 동침’이 아니라 ‘삽과의 동침’으로 이라고.(웃음)

- 상대역인 김주혁과는 호흡이 잘 맞았나?
▲ 그는 다정다감하고, 배려심도 많다. 많은 여배우들과 호흡을 맞춰봐서 여배우의 특성을 잘 알고 예민하게 반응 해준다. 그와 연기하는 분들은 로또 당첨 된 거다.
- 직감에 의존하는 편인가 철저히 캐릭터를 분석하는 스타일인가?
▲ 태생적으로 분석을 못한다. 직감적으로 안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어떤 캐릭터는 ‘나 아니면 안되겠다’는 게 그려진다. 내가 하면 나비처럼 날아가서 벌처럼 쏠 수 있겠구나. 내가 못하는 작품이 탐이 날 때도 많은데 잘 할 수 없는 역이라면 깨끗이 포기하는 스타일이다. 나를 위한 위한게 아니라 시청자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 흥행 점친다면?
▲ 300만 명. 영화에 대한 애정도 애정이지만 스태프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처음으로 그 사람들의 입장을 공감하게 됐다. 하루는 내가 슬레이트를 담당했던 적이 있다. 배우들이 찍을 준비가 다 돼 있으면 나는 화장실도 갈 수 없었다. 배우들이 무심코 밟고 지나간 모 하나 하나를 일일이 손으로 다시 세우는 스태프들을 보면서, 그래도 배우들에게 “밟지 말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존경하게 됐다, 고생한 스태프들 때문에라도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

- 본인에 대한 기사 하나, 사진 한 장까지 다 확인하는 걸 보니 완벽주의자인가 보다.
▲ 완벽주의자라기 보다 심미안이 있어서다. 심미안을 추구하기 때문에 원하는 게 나올 때 까지 한다. 완벽하다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니까. 패션, 연기처럼 내가 좋아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깐깐하다. 그 이외에 건 다 무디다.
- 어떤 걸 좋아하나.
▲ 상담하는 걸 좋아한다. 상담하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공감하다보면 그 사람 겪은 아픔을 알게 되고 그걸 연기해 낼 수 있다. 심리학 책도 많이 읽는다.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사람의 내면에 관심이 많다. 패션에 관심이 많고, 평소 옷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건 창의적인 표현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 ‘적과의 동침’은 개봉했고, 차기작 ‘통증’은 크랭크업했다. 앞으로 계획은?
▲ 정려원이라는 건물에 살고 있는 두 친구와 당분간 오붓하게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적과의 동침’에서 맡았던 설희는 최근 다시 짐을 싸서 들어왔고, ‘통증’의 동현이는 아직 집을 나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잠깐 있게 할 생각이다.
1950년 대 평화로운 시골마을 석정리를 배경으로 마을에 들이닥친 인민군과 이들에게 로비작전을 펼치는 순박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휴먼 코미디 ‘적과의 동침’은 28일 개봉해 상영중이다.
tripleJ@osen.co.kr
<사진> 손용호 기자 spjj@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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