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 칼럼] 최고가 아닌 것은 용납할 수 없어 우울증, 불면증 시달려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1.05.02 16: 17

경쟁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저마다의 욕망과 사회적 성공 등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경쟁 구도는 비단 성인들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어서 유년 시절부터 현대인들은 삶을 통과하는 모든 과정을 전투로 받아들이고 이기지 않으면 열등생이 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되기도 한다.
자영씨는 국내 굴지의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엘리트다. 유년시절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자랑했던 자영씨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위치일 수 있다. 더구나 부유한 집안과 뛰어난 외모까지 그야말로 최근 유행하는 '엄친딸'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부러워할 위치에 있는 자영씨가 나를 찾은 것은 1년 전 즈음 이었다. 나와의 상담 중에도 모든 질문과 답변에 자신감이 넘치는 태도를 보이던 자영씨가 치료 얼마 후 눈물을 흘리며 했던 말은 "내 삶에 최고가 아닌 것은 용납할 수 없어요. 그렇게 살았고 현재 나에게 최고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지만, 그런데 이게 난데,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 왜 두렵고 무섭기만 할까요?"라고 했다.

자영씨가 우울증과 불면증을 겪게 된 것은 나를 찾기 2년 전부터였다. 유복한 가정에서 단 한 번도 최고의 자리를 놓친적 없이 30년 이상을 살아온 자영씨였다. 항상 시기와 때를 구분하여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던 자영씨가 조금씩 흔들리게 된 계기는 서른 살에 만난 한 남자 때문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그 남자는 다른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다. 그 남자와 자영씨는 한 눈에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은 연애를 하게 되고 결혼을 꿈꾸게 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두 사람이 결혼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남자의 집안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그리 유복하지 않은 편이었다. 더구나 암 투병 중인 어머니와 그 어머니 병원비를 충당하기 어려운 평범한 집안의 유일한 가장이었던 것이다.
주위에서는 자영씨에게 "언제 고생에서 헤어날 것 같으냐? 네가 뭐가 모자라 그런 집으로 시집을 가느냐?"며 포기하라고 권했다. 자영씨 집에서도 반대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영씨 역시 현재 그 남자가 처한 상황을 함께 헤쳐나갈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최고가 아닌 것은 용납할 수 없었던 자영씨는 남자의 집안 형편이 어렵다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고민 끝에 자영씨는 그 남자에게 이별을 선포했다. 그 남자는 1년 후에 다른 여자와 결혼했고 그 소식을 접한 후 자영씨는 뭔지 모를 불안과 초조함으로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불면이 지속되자 각 잡아 놓은 듯 했던 자영씨의 일상이 조금씩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만사가 귀찮고 생각없이 멍 한 상태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 순간 그런 자신의 모습에 화가 치밀고 짜증이 났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고칠 방법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 술이라고는 1년에 한 두번 정도 마시지 않던 자영씨가 매일 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가 어쩌면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는 행복이란 상당히 주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개개인이 각자의 주관에 따라 가치관도 다르기 때문에 어떤 상황을 행복이라고 느끼는 지 통일 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자영씨의 행복도 사실 반드시 최고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서 허무함을 느꼈듯 그것을 계기로 자영씨는 새로운 행복에 대한 정리를 하기 위해 잠시 혼란을 겪었다고 볼 수 있다.
자영씨는 최근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나에게 치료를 받으며 일사천리로 준비한 유학이었다. 자영씨는 떠나면서 내게 "원장님 말씀처럼 내가 외면한 나의 내면, 나의 솔직한 감정 등 먼저 나를 돌아보니 내가 성취하고 싶었던 최고의 가치가 지금 내가 가진 것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유학을 떠납니다"라고 했다. /자하연한의원 임형택박사 (경희대 한의예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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