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창출? 구호보다 실질지원 절실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1.05.02 17: 17

- 사랑의 보일러 교실 ‘슈바이처’ 이영수 명장
실직·노숙인 재활 위해 13년째 봉사
서울숲 만들때 쫓겨나 모금통해 이전

공간 협소…“희망 불씨 있는 한 계속”
[이브닝신문/OSEN=장인섭 기자] 고만고만한 작은 공장들이 빼곡히 들어찬 서울 성수동 성수역 부근, 허름한 구멍가게 옆 골목길 안쪽에 ‘사랑의 보일러 교실’이라고 적힌 나무간판과 함께 좁은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1998년 IMF로 실직했거나 불황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사재를 털어 거의 무료로 보일러 수리·시공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다. 80㎡(약 25평)도 채 안 되는 협소한 강의실에는 삐걱대는 6개의 책상과 보일러 배관파이프, 각종부품, 공구들이 가득 들어차 있고 실습공간에는 뜯다만 보일러들이 먼지와 함께 수북히 쌓여 마치 고물상을 연상시킨다. 이곳에서 13년째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수하고 있는 보일러 명장(名匠) 이영수 교장(56)을 만났다. 사람들은 그를 부를 때 ‘성수동 보일러 슈바이처’라고 부른단다.
 
-보일러를 처음 배운 것은 언제인가?
어렸을때는 형들이 운영하는 철공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파이프를 가져다 철제의자를 만들어 팔았는데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좋단 소리를 듣던 터라 각종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만물공작소’를 차렸다. 보일러와의 첫 인연은 결혼을 앞두고 있던 1977년의 일이다. 당시만해도 보일러는 부자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보일러기술을 배우면 언젠가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기술자들의 말만 듣고 겁 없이 보일러 일에 뛰어들었다. 물자가 귀했던 시절, 기술을 가르치는 곳도 없어 청계천 보일러 상가를 찾아다니며 물어물어 기술을 배워야 했다. 
 
-‘사랑의 보일러 교실’을 열게 된 동기는?
1998년 명장 선발과 함께 서울시에서 자랑스런 시민상을 받게 됐다. 포상금만 1100만원 이었다. 한 달도 안되는 사이에 거금이 손에 들어왔다. 가족들과 포상금의 사용처를 놓고 고민하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가지고 IMF로 실직한 실업자들을 도와보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가족의 이해를 구하고 나니 막상 이들을 가르칠 장소가 문제로 떠올랐다. 곧장 성동구청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장소를 알선해 달라고 부탁했다. 봉사활동 등을 통해 이미 안면이 있던 고재득 구청장의 노력으로 1998년 12월 지금의 서울숲 자리에 40평 규모로 ‘사랑의 보일러 교실’을 오픈했다.
 
-수강생들은 어떤 분들인가?
교육생의 대부분은 실직한 40~50대다. 절박한 현실 속에 참여하는 교육이기 때문에 열의가 대단하다. 첫 보일러 수업이 시작된지 3개월만에 자격증을 하나씩 취득하기 시작해 졸업할 무렵에는 2~3개의 자격증을 따는 분이 나올 정도로 결과가 좋았다. 수업은 1주일에 4~5일간 6개월 과정으로 1일 2시간30분 교육이 진행된다.(오후7시~9시30분)
지금까지 23기(현재 24기 수업 중), 총 500여명이 이곳을 거쳐갔다. 40~50명은 자신의 이름으로 창업에 성공했고 100여명 정도는 취업을 통해 새 삶을 살고 있다.
  
-가장 시급한 문제라면?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기관이다 보니 재정적인 어려움이 가장 크다. 실습용 보일러와 봉사활동에 사용하는 보일러는 린나이코리아로부터 무상으로 지원받고 있으나 수업료와 봉사활동 경비를 포함해 1인당 하루 1400원의 수강료로는 매달 임대료와 실습기자재 구입비용을 감당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까지도 보일러 설치 및 수리로 번 돈을 털어 넣어 근근이 운영하고 있다.
 
-현재 위치로 이전한 이유는?
서울시가 시민을 위한 서울숲을 조성하던 2005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으로부터 시설을 비워달라는 명도소송을 받았다. 서울시로부터 임대해 성동구청의 사용허가를 받아 이용하던 시설이었던 만큼 법원에까지 가서 재판을 받았지만 시설을 반환할 수밖에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당시 서울숲을 방문한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면담을 요구했지만 제지 당하고 다음에 만나주겠다는 약속만 받았다. 하지만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에 몇 차례 면담을 요구했지만 끝내 만나볼 수 없었다. 교실을 운영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해 폐교를 생각했는데 교육중이던 보일러교실 13기 학생들이 자발적인 모금으로 1500만원의 성금을 모아왔다. 또 린나이코리아 모 임원이 3000만원, 직원들이 모금한 600만원으로 현재의 자리에 둥지를 마련했다.   
 
-아쉬움이 많을 것 같다
현 정부가 강조하는 것이 일자리 창출이다. 개인이 나서서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준다는데도 별다른 지원이 없다. 매년 수십억원의 자금을 일선 대학이나 기업에 내려보내 일자리 창출에 힘을 보태겠다고 하면서도 개인이 운영한다는 이유로 이런 시설은 철저히 외면 받고 있는 실정이다. 재정적인 지원은 아니더라도 교육생들이 보다 쾌적한 공간에서 수업할 수 있는 공간 정도는 정부에서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
 
-어려운 여건 속에 보일러교실을 계속하는 이유는?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사랑의 보일러 교실’은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는 마지막 희망 같은 곳이다. 많은 숫자는 아니더라도 그들에게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살릴수 있는 기회마저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이 아닌 만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희망을 되찾는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할 생각이다.
 
-명장으로서의 편한 길도 있었을 텐데…
명장이라는 명예를 이용해 돈벌이에 나섰더라면 큰돈을 벌지 않았을까? 하지만 어렵게라도 ‘사랑의 보일러 교실’을 이끌어 갈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한다. 기능강국 대한민국의 명장으로서 자신의 기능을 전수해 훌륭한 기능인이 계속 배출될 수 있는 사회적 배경을 만들고 기회를 나누는 것이 명장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능인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부 기관에서 IMF 이후 기능인에게 생긴 변화가 일명 임시직으로 불리는 용역의 등장이다. 청와대부터 용역을 쓴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앞장서서 임시직을 쓰는데 대기업에서 정규직을 쓸 이유가 없다. 정부가 나서서 솔선수범을 보여도 부족할 판에 정부가 임시직 고용을 장려하는 꼴이 되버린 셈이다. 그러니 누가 기능을 배우겠나? 정부기관부터 기능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기능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없어진다면 기능강국은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다.
ischang@ieve.kr /osenlife@osen.co.kr
<사진>실직자·노숙인들의 재활을 위한 ‘사랑의 보일러 교실’을 13년째 무료로 운영하고 있는 이영수 보일러 명장.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간 500여명의 졸업생들은 창업·재취업 등을 통해 잃어버렸던 희망을 되찾아 인생 제2막을 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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