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에서 글러브를 끼고 있는 야구선수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생각만 합니다. "타자의 타구를 다 잡아내겠다"고 말이죠. 그러나 인력으로 안 되는 일이 가끔 벌어집니다. 잠실야구장 우익수들의 고충을 들어봤습니다.
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LG 우익수 이진영은 강귀태의 타구를 쫓아가다 그만 공을 뒤로 빠뜨렸습니다. 평범한 타구였습니다. 그런데 타구가 라이트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이진영은 그만 몸을 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강귀태의 타구는 우월 3루타가 되면서 1루에 있던 주자가 득점에 성공하며 LG로서는 뜻하지 않은 실점을 하게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연장 접전 끝에 9-10으로 패했습니다.
혹시 기억하시나요.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가끔 회자되는 지난 2009년 플레이오프 3차전 연장 10회초. SK 박재상이 친 타구가 우익수 정수빈쪽으로 날아갔습니다. 충분히 잡을 수 있는 타구였지만 라이트 속으로 들어가면서 이 타구는 3루타가 됐고 두산은 1-3으로 패했습니다. 이 경기 전까지 시리즈 전적 2-0으로 앞서던 두산은 이날 패배 후 내리 3연패를 당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물론 이 경기 때문에 두산이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1982년 7월에 완공된 잠실야구장은 올해로 30년째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와 함께하고 있는데요. 30년이 지나는 동안 경기장 내 시설물 개선에는 여전히 미미한 점이 많습니다. 특히 라이트 시설인데요. 우익수가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잡을 때 3루 덕아웃 위쪽에 위치해 있는 라이트 속으로 타구가 들어갑니다. 타구가 그 안으로 들어가면 아무도 잡을 수 없게 됩니다. 좌익수의 경우도 비슷하다고 하는데요. 1루 덕아웃 위쪽 라이트 속에 들어가면 놓치게 된다고 합니다.
올 시즌 잠실에서 총 3차례 우익수쪽 타구가 라이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불행하게도 이진영 선수가 두 차례, 두산의 임재철 선수도 한 번 뒤로 빠뜨렸습니다. 이들 모두 최고의 수비를 자랑하는데요. 이 같은 일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올해만 벌써 두 차례 이런 경험을 한 이진영은 팬들과 동료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진영은 2일 오전 OSEN과 전화통화에서 "어제 강귀태 선배의 타구였는데 원래 그 위치가 항상 라이트 속으로 들어간다. 타구가 뜨면 외야수들은 보통 어느 정도 위치에 올 것이라고 예측을 한다. 공이 보여야 예측을 하는데 라이트 속으로 들어가면 거리만 계산되고 공이 안 보여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나 역시도 항상 팀이 이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입장이다. 어떻게 보면 실수 아닌 실수가 된다. 특히 어제 같은 경우는 2군에서 고생하다가 1군에 올라온 봉중근이 어서 더 미안했다. 맘 같아서는 순간 라이트를 꺼서 잡고 싶을 정도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이진영은 또 "신인 시절에 이 공을 몸으로 한번 막아보자는 마음으로 해봤는데 공은 안 보이고 정말 몸에 맞더라. 이건 정말 위험하다. 라이트 위치를 바꾸지 않는 이상 변화가 없을 것 같다. 결정적인 상황에 나오면 승패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생각된다. 팀과 팬들에게 죄송한 플레이다. 그런데 이건 실력이 아니라 주변 환경 때문에 실수를 하는 것이다. 시설만 보완된다면 선수들은 더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다. 선수들이 더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시설을 꼭 개선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간곡히 부탁하더라고요.
라이트 속으로 들어가는 타구는 안타로 기록이 되는데요. 이에 해서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비수가 충분히 잡을 수 있는 타구였지만 불빛에 들어가면서 불가항력적인 상황으로 간주해 보통 수비 범위에서 제외한다. 잠실의 경우 우익수와 3루수 높은 바운드에서도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 사직구장 우익수 자리도 타구가 불빛에 들어가곤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야구 규칙 10.05조 (d)항에 따르면 '페어볼이 야수에게 닿지 않고 외야의 페어지역에 도달하여 타자가 안전하게 1루에 나아갈 수 있게 되고 더욱이 그 타구를 야구가 보통 수비로는 도저히 처리할 수 없다고 기록원이 판단한 경우'라는 조항을 통해 이 타구는 안타로 기록이 됩니다.
이날 경기 해설을 맡은 양상문 MBC LIFE 해설위원은 "프로스포츠는 실력에 의해서 판가름이 나야 된다는 생각을 한다. 최근에 타구가 라이트에 들어가면서 승패가 바뀌는 경우가 있다. 개선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야구장 자체를 새로 만들 수는 없다. 라이트를 2줄로 가로로 길게 가져가는 식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내야에도 라이트를 추가로 설치하면 이러한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밝혔습니다.
이대형(28, LG)도 이진영의 애로사항을 듣고서는 "이 타구는 아무도 못 잡는다. 맘 같아선 나도 매번 그곳으로 타구를 날리고 싶다. 그러면 맨날 3루타 칠 수 있는데…"라며 농을 던졌습니다.
농담을 농담으로 받지 않고 시설 개선을 통해 선수들의 부상 위험도 줄이고 경기 수준을 끌어올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약 개선이 된다면 30주년을 맞아 선수들에게 작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요.
agass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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