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들의 외침 끼익~끼익~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1.05.04 17: 10

무생물, 아픈 마음 대신 소리…이스탄불 여행 중 소음서 착안 동화
끼익끼익의 아주 중대한 임무 
배명훈|96쪽|킨더주니어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요정이라고 불러도 괜찮아. 비슷한 점이 아주 많으니까.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끼익끼익은 요정이 아니야. 끼익끼익들은 거의 다 도시에 모여 살거든.” 집 안이든 공장 안이든 아니면 길가 시장터든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머물러 사는 작고 투명한 소리 끼익끼익들. 이들이 처음 세상에 나타난 것은 삼백 년 아니 사백 년 전쯤 됐을까.
‘Smart D’ ‘타워’ ‘안녕, 인공존재!’ 등의 전작으로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SF작가가 아이들을 위한 독특한 상상력을 발휘했다. 주로 도시에 숨어 살면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자신의 역할을 해온 소리 요정 ‘끼익끼익’의 이야기를 장편동화로 펴냈다.
가장 나이가 많은 빼고닥빼고닥을 비롯해 농구장 마룻바닥에 사는 아요아요, 종이와 연필 사이에 사는 스작스작 등 모든 끼익끼익은 스스로 아주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생명이 없는 사물들을 대신해 그들이 앓고 있을 아픈 마음을 소리로 내서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귀 기울이고 있으면 끼익끼익의 울림을 들을 수 있다. 작은 기차, 컴퓨터, 운동화, 냉장고, 엘리베이터 등에선 연일 끼익끼익의 외침이 울린다. 그런데 어느 날 세상의 끼익끼익들이 몽땅 사라져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고요해진 세상에선 예고치 못한 사고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2010년 터키 이스탄불 여행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가가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는 소리의 목록을 써내려가면서 스토리를 발전시켰다. 물건의 틈새에 살면서 사물을 대신해 위험신호를 보내는 끼익끼익들은 그렇게 창조됐다. 여기에 게임 디자인을 해온 화가 이병량의 삽화를 페이지마다 채워 넣어 이야기 흐름의 구상력을 높였다.
고장 난 물건을 고치는 기술자가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큰 줄기로 삼았다. 그는 자동차가 멈추고, 다리가 휘어지고, 건물 벽이 갈라지며, 기계들이 폭발하는 사고가 생긴 이유가 끼익끼익이 사라졌기 때문이란 사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아빠가 처음 끼익끼익을 만난 건 이스탄불의 어느 트램 안에서였어.” 터키 이스탄불의 어느 도로에서 경험한 소년의 회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모퉁이를 도는 전차들이 내지르는 끼익끼익 비명이 아이 인생의 ‘첫 끼익끼익’이라고 표현했다. 그 순간 소년은 직감한다. “아, 사람들 눈에 안 보이는 누군가가 이 기차 연결고리 근처에 살고 있구나.”
끼익끼익의 비명을 우주로까지 끌어올려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하는 임무를 부여한 작가의 상상력은 좁은 지구땅에 머물지 않는다. 끼익끼익의 활약으로 종국엔 우주와도 소통하게 된다. 그 과정이 진지하게 그려진 책 안엔 물건의 틈새에서 우주의 거대공간으로 확장되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나이가 든다는 건 더 많은 끼익끼익들을 알게 되는 일이었어. 전에는 몰랐던 작은 소리들까지 하나씩 하나씩 배워 가는 과정이었으니까.” 보이지는 않지만 거대한 도시 안엔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구성원들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아이들 말과 눈, 마음으로 풀어냈다.
euanoh@ieve.kr /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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