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대전구장. 경기 전 1루측 한화 덕아웃에서 한화 한대화 감독이 취재진과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반대편 덕아웃에서 한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는 한 감독과 눈이 마주 치고서는 모자를 벗어 꾸벅 인사했다. 한 감독은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짐짓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다름 아닌 박정권(30)이었다.
한 감독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너, 내가 배트 스폰서 도와줬는데 그러기야?"라고 박정권을 쏘아붙였다. 그럴 만했다. 박정권은 전날 경기에서 결승 2루타 포함 5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하며 한대화 감독의 한화를 울리는 데 앞장섰다. 곧바로 허리를 숙인 박정권은 "감독님 죄송합니다"며 한발 물러서는 듯하더니 "오늘은 안타를 치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홈런을 치겠습니다"라고 응수했다.
그러자 한 감독은 "내가 안타 치지 말라고 하는 건 아니다. 너도 먹고 살아야지. 그런데 (승부에) 관계없을 때 치란 말이야"라며 박정권을 다독였다. 박정권이 웃으며 사라지자 한 감독은 "박정권이랑 나랑 그렇게 많이 닮았나"라며 "내 아들도 자기보다 박정권이 날 더 닮았다고 하더라"면서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감독과 박정권은 비슷한 이목구비에 안경까지 쓴 닮은꼴이다.

한 감독과 박정권은 동국대 시절 사제 지간이었다. 한 감독이 직접 전주고를 다니던 박정권을 스카우트했다. 한 감독은 "내가 직접 전주까지 내려가서 데려왔다. (박정권의) 부모님들과도 잘 안다"며 "1학년 때부터 3번타자로 뛰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한 감독의 지도를 받은 박정권은 지금 1위팀 SK를 대표하는 간판 타자가 됐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는 냉정했다. 한 감독의 당부 아닌 당부를 잊었는지 박정권은 1회 시작부터 무사 2·3루에서 우익수 쪽 깊숙한 2타점 2루타를 날리며 기선제압에 앞장섰다. 5타수 2안타 2타점. 2경기 연속 결승타 포함 멀티히트를 작렬시키며 스승의 팀을 다시 한 번 울렸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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