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88만원 세대를 대변한 장재인(좌)과 골드 미스를 대변한 임정희(우)

"마주본 식탁에 성의 없는 젓가락질. 시간이 지루하네. 느리게 흘러가네. 마주본 그대의 성의 없는 반찬을 보면 그대는 철이 없네. 우리 둘 변해가네."
최근 발표된 장재인-김지수의 듀엣곡 '그대는 철이 없네' 가사 중 일부다. 가난한 88만원 세대 커플의 권태기를 다룬 이 곡은, 돈 없는 동거 커플이 서로에 대해 애정이 점차 식어가는 상황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생활밀착형' 가사들이 네티즌의 공감을 끌어내며 각광받고 있다. 기존의 만남, 이별 등의 상황을 보편적으로 노래한 곡들 대신, 보다 더 구체적이고 리얼한 상황 설정을 통해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곡들이 다수 발표되고 있다.
임정희는 오는 9일 커리어우먼의 이별을 그린 '골든 레이디'를 발표할 예정. 이 곡은 여자의 집에서 호의호식하던 남자친구가 쫓겨나는 구체적인 상황을 그린다. 당당한 록 스타일의 이 곡에서 임정희는 "이 집은 내 것이니, 이제 그만 나가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여성이 경제적으로 더 능력있는 커플들이 늘고 있는 현 상황을 대변한 것이다.
힙합그룹 이루펀트는 트위터를 통해 남녀간 관계가 시작되는 세태를 적절히 반영한 곡 '쉬 이즈 낫 팔로잉 유(She Is Not Following You)'를 발표했다. 이 가사에서는 호감가는 여성을 트위터를 통해 '팔로우'했지만 상대가 '맞팔'을 해주지 않아 갈등하는 구체적인 상황이 리얼하게 그려졌다.
이루펀트는 이 곡을 통해 "어려운거 아닌데 맞팔하잔 말도 쉽게 나오질 않았죠.(중략) 근데 왜 내 글엔 답글이 없니. 집에 가면 맞팔도 바로 한다더니 니가 좋지만 들이대긴 싫어.(중략) 이건 소통일까. 그저 고통일까. 우리 사인 글러 먹었구나. 딱 보니까 방안에서 외로움을지저귀겠지"라고 노래한다.
인디씬에서는 십센치의 '아메리카노'가 롱런을 기록 중이다. 십센치는 이 곡에서 "이쁜 여자와 담배피고 차 마실 때, 메뉴판이 복잡해서 못 고를 때, 사글세 내고 돈 없을 때, 밥 대신에 짜장면 먹고 후식으로, 아메리카노 좋아 좋아 좋아"라고 노래한다.
생활용품 샴푸는 애프터스쿨의 신곡 '샴푸'에서 새롭게 해석됐다. 애프터스쿨은 이 곡에서 "샴푸가 되고 싶어. 그대의 머리카락에 나 흘러내리며 짙은 나의 향기로 그대를 감싸고 싶어요"라고 노래한다. 하이라이트는 후렴구 가사. 후렴구는 "혹시 너 별 별 별 이유로 나를 슬프게 하면 너의 눈을 따갑게 할거야. (중략) 거울도 너를 보지 못하게 하얀 거품들로 니 온몸을 다 감싸버릴거야"라는 가사로 구성됐다. 노골적이고 유치한 표현을 썼지만 기존 사랑 노래보다 훨씬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같은 노래들은 필연적으로 특정 세대의 열렬한 지지를 수반한다. 동거에 큰 거부감이 없는 젊은 세대, 돈 잘 버는 골드미스, 스마트폰 유저 등 각 곡들마다 가사와 동일시할 수 있는 집단이 특정돼있다. 한 가요관계자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지만 크게 와닿진 않는 보편적인 감성보다는, 일부 집단에서 보다 열렬한 지지를 얻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면서 "특히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려면, 그들의 언어로 노래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rinn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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