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5일 어린이날. '적토마'이병규(37, LG 트윈스)에게는 매우 특별한 날이었다.
이병규는 5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잠실 라이벌' 두산 베어스전에서 5번 타자 좌익수로 선발 출장해 8회 좌월 쐐기 스리런 포함 5타수 2안타 1홈런 4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12-4 대승을 이끌었다. 전날(4일) 연타석 투런으로 팀의 4점을 모두 기록하고도 4-5 분패한 것을 설욕하는 활약이었다.
그러나 정확히 1년 전 어린이날. 이병규는 가장 슬프고 마음이 아픈 어린이날이었다.

일본에서 뛰다 3년만에 한국에 복귀한 이병규는 오랜만에 가족들, 친구들까지 20명을 잠실야구장으로 초대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당시 병환으로 집에 누워 있던 아버지는 아들 이병규가 나오길 바라며 브라운관을 통해 경기를 지켜봤다.
그러나 경기 전 전광판 선발 라인업에 이병규는 없었다. 대타로도 출장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큰 마음을 먹고 경기장을 찾은 20명이 넘은 가족들은 경기 도중 자리를 떴다.
일본에 진출하기 전 이병규는 LG를 대표하는 선수였다. 그래서 어린이날에 선발 출장은 걱정할 요인이 아니었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병규는 지난 시즌 초 컨디션 저하와 국내 복귀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이 때문에 어린이날 그는 벤치를 지켰다.
이병규는 1년전 가족들 앞에서 부끄러웠던 모습을 회상하며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야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경기에 뛰지 못해서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내가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병규는 지난 1년 전 그 순간을 가슴속에 품고 있었다. 그 이유 때문이었을까. 이병규는 경기 내내 타석에서, 그리고 1루까지 뛰는 동안에도 최선을 다했다. 수비를 할 때도 다른 때보다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경기장에는 이병규의 어머니 김순금(58) 씨를 비롯해 아내 류재희(37) 씨, 두 아들 이승민(7), 이승언(5) 군, 그리고 매형, 조카 등 9명의 가족이 3루 덕아웃 위 테이블석에 앉아 있었다. 그의 헬맷에 새겨진 이니셜의 주인공들이다.
마침내 이병규는 1년이 지난 2011년 어린이날에서는 당당히 양팀을 통틀어 주인공이 됐다. 그는 "오늘은 지난해 못 나갔던 것을 생각했다. 가족들에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나뿐 아니라 가족들, 친구들 모두에게 기억에 남는 어린이날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홈런을 치고 3루측 덕아웃으로 들어온 이병규는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맘껏 축하를 받았다. 3루측 덕아웃 위에 앉은 가족들을 보며 하트도 날렸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보고 싶은 한 사람이 없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였다.

이병규 역시 "아버지 생각이 났다. 그렇지만 오늘 내가 잘할 수 있었던 것은 다 하늘에서 보고 계실 아버지 덕분이다. 아버지께서 응원해 주셨기 때문이었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이병규는 올 시즌 초 약간의 슬럼프 기운이 있었다. 이병규는 곧장 아버지가 계시는 경기도 이천 납골당에 다녀왔다. 그는 "개막 후 컨디션이 안 좋았을 때 아버지가 계시는 이천에 있는 납골당에 다녀왔다. 아버지께서도 안타까우셨는지 그 뒤로 내가 잘하도록 많이 도와주신다"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9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도전하는 LG는 6일 현재 15승12패를 기록하며 단독 3위를 달리고 있다. 무엇보다 그 중심에는 팀 내 최고 '베테랑'이병규가 있다. 지난 겨울 체력훈련 때부터 후배들보다 앞서 가장 먼저 솔선수범했던 이병규가 좋은 성적을 올려준다면 LG로서는 앞으로 찾아올 고비를 넘길 힘이 생긴다.
지난해 LG 1차 지명을 받고 쌍둥이 유니폼을 입은 임찬규(20)는 어릴 적 이병규의 플레이를 보고 야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어린이날을 맞아 잠실경기장을 찾은 아이들은 어림잡아도 수천명은 됐다. 이병규는 10여전 전 임찬규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준 야구선수였다.
agass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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