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요정'박경수(27, LG 트윈스)가 박종훈(52)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1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전에서 역전 만루홈런을 쳐서였을까. 아니다. 박경수는 올 시즌 31경기 내내 선발 출장하며 자신의 주 포지션인 2루뿐 아니라 유격수로서도 맹활약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박경수의 타격이 아닌 수비, 그리고 팀을 위해서 자신을 묵묵히 희생하는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마운드에서 박현준, 타자들 가운데서는 박용택, 이병규, 조인성 등에 가려 박경수의 존재감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꼼꼼히 들여다 보면 박경수는 상승세 LG의 숨은 MVP다.
▲수비 요정, 없어서는 안될 존재감
박종훈 감독은 박경수가 만루 홈런을 치기 4시간여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실 우리 팀에서 정말 칭찬받아야 할 선수는 박경수"라고 말했다. 박경수는 올 시즌 2루수로 24경기, 유격수로 20경기를 출장했다. 경기 중 포지션 이동도 심했다.
비록 지난달 24일 잠실 KIA전, 25일 잠실 KIA전, 그리고 27일 사직 롯데전까지 3경기에서 실책을 4개나 범했다. 시즌 초 호수비를 수 차례 보여줬지만 순식간에 수비요정이라는 말 대신 평범한 수비도 못하는 선수가 되어버렸다.

박경수도 "경기를 하다 보면 뭔가 홀리는 그런 게 있다. 결과적으로 내가 잘못한 거지만 이때 정말이지 스스로에게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침대에서 눈만 말똥말똥해서 해가 뜬 다음에서야 겨우 잠이 들곤 했다"면서 "팬들도 이해가 안 가는데 난 오죽했겠냐"며 힘든 시간을 회상했다.
그렇지만 박경수는 LG 내야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11일 현재 박경수는 2루수로 출장해 144이닝을 소화하며 9할7푼9리를, 유격수로 출장한 123⅔이닝 동안은 9할6푼2리로 평균 이상의 수비를 자랑한다. 물론 지난해 자신의 주 포지션인 2루수 수비율이 9할9푼1리인 것에 비하면 많이 떨어지지만 박경수는 이에 대해서 전혀 아쉬움이 없다. 그는 "비록 실책은 몇 번 했지만 팀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다"며 웃었다.
▲아픔도 참고 뛴 책임감과 희생정신
박경수가 지난달 실책을 자주 범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먼저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박경수는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4월 10일 대전 한화 원정을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 이틀 동안 조용히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다. 감기 몸살과 함께 장염 때문이었다.
박경수는 누구에게도 아프다는 말도 하지 않고 식은땀을 흘려가면서 묵묵히 훈련을 소화했다. 이후에도 매 경기 선발 출장했다. 어떤 날은 탈수 현상도 있었지만 조용히 물만 들이키며 이닝이 바뀔 때마다 열심히 그라운드로 뛰어 나갔다. 심지어 경기 전 특타도 했다. 그러나 몸이 정상이 아니었기에 경기에서 집중력은 보통 때보다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더불어 박경수는 데뷔 후 대부분의 시간을 2루수로 출장했다. 지난해 2루수로 605이닝, 유격수로는 32이닝에 그쳤다. 2009년에도 2루수로 645⅔이닝을 출장했다. 2루수 평균 수비율은 9할8푼 후반이다. 그러나 올해는 유격수로 출장이 벌써 100이닝이 넘는다. 박경수는 "미세한 차이지만 유격수와 2루수는 수비 위치, 타구를 쫓아 움직이는 스텝, 그리고 송구 방법과 거리에서 차이가 난다"면서 "가끔은 유격수에서 공을 잡아 1루에 공을 뿌리고서 '아. 짧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변명은 필요 없는 것 같다. 다 내가 이겨내야 할 부분이다"며 고충을 털어 놓았다.

▲군 입대 전 마지막 목표는 우승
박경수는 지난 2003년 드래프트 때 LG에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한 특급 유망주였다. 그러나 박경수는 왠지 팀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는 "내가 입단한 뒤 우리 팀이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래서 동기들끼리 우리 때문이 아니냐는 농담 아닌 농담도 한다"면서 "난 올해를 마치고 군입대를 해야 한다. 가기 전에 꼭 가을 야구를 하고 싶다. 가을 야구를 넘어 우승까지 하고 싶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박경수는 개인적인 목표로 출루율 4할에 130안타를 잡고 있다. 타순은 2번이든, 9번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11일 현재 박경수는 2할5푼2리의 타율에 26안타 출루율은 3할9푼1리를 기록 중이다. 지금 상태로라면 133경기를 소화할 때 112안타에 출루율은 3할9푼1리 밖에 되지 않는다. 조금만 더 분발하면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다.
박종훈 감독이 자신을 칭찬했다는 말에 박경수는 "나뿐 아니라 모두가 칭찬 받아야 한다. 모든 선수들이 올해는 성적을 내자는 의식이 매우 강하다. 비록 리드를 당하고 있었지만 우리가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면서 "내야 수비를 하는데 있어서 2루와 유격수를 같이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지만 내게 주어진 임무다. 이겨낼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agass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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