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문을 놓고 과감한 결정도 필요할 것 같다".
박종훈(52, LG 트윈스) 감독이 마무리투수 김광수(30)의 불안한 모습에 처음으로 심경의 변화를 나타낸 듯한 발언을 했다.
박 감독은 12일 잠실 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전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둔 뒤 기자들과 만나 "김광수가 더 좋아지길 바란다. 그러나 과감한 결정도 필요한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날 경기 전까지만 해도 박 감독은 "우리 팀 마무리는 김광수다.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심리적인 부분만 극복하면 더 좋아질 것"이라며 김광수를 껴안았다.
그러나 12일 김광수는 팀이 1-0으로 앞선 9회말 마운드에 올라 선두타자 이여상에게 중전안타, 장성호를 볼넷으로 내보내며 무사 1,2루 역전 위기에 맞았다. 그러자 최계훈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가 김광수를 진정시키고 내려왔다.
최 코치의 조언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김광수는 최진행을 삼진으로 처리한 데 이어 정원석 마저 2루수 플라이로 잡아내며 2사 1,2루가 됐다.
위기를 자초했지만 스스로 이겨내는 듯 싶었으나 김광수는 이양기에게 좌전안타를 맞으며 동점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좌익수 이병규의 정확한 홈 송구와 포수 조인성의 블로킹 덕분에 대주자 전현태를 홈에서 잡아내며 1-0 승리를 지켜냈다.
결과만 놓고 볼 때 김광수는 1이닝 2피안타 1사사구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올렸다. 분명히 승리를 지켜냈지만 박종훈 감독을 비롯한 LG 선수들은 또다시 가슴을 쓸어 내리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마무리 김광수의 부진이 최근 한두 경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김광수는 올 시즌 15경기에 등판해 14⅔이닝을 던져 19안타 12사사구를 내주고 있다. 이닝당 주자 출루이 2.05, 평균자책점도 3.68이나 된다. 피안타율 역시 3할2푼8리로 높은 편이다. 객관적인 데이터만 놓고 보면 현재 김광수의 성적표로는 마무리 투수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박종훈 감독은 12일 경기 후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 "과감한 결정도 필요한 것 같다"는 그의 발언에서 예측 가능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김광수를 대신할 마무리 후보는 어떻게 될까. 현재까지 LG 마운드를 놓고 볼 때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집단 마무리로 가나?
먼저 집단 마무리 체제로 가는 것이다. 현재 LG 불펜진은 김광수를 비롯해 좌완 이상열(34), 우완 셋업맨 이동현(29)이 있다. 우완 롱 릴리프로 한희(22), 임찬규(19), 사이드암 김선규(25), 좌완 최성민(21)이 있다.
즉, LG는 좌우 뿐 아니라 옆구리 투수까지 있어 상대 타자와 경기 상황에 맞게 투수들을 등판시켜 뒷문을 잠글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지난 이상열은 지난 3일 잠실 두산전에서 김광수에 9회 투아웃에 등판해 범타로 막고 세이브를 올렸다.

사이드암 김선규 역시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때 140km 중반대 힘있는 직구와 각도 큰 슬라이더를 구사하며 한때 마무리 후보이기도 했다. 김선규는 시즌 초 페이스가 떨어졌으나 최근 페이스가 다시 살아나며 1일 잠실 넥센전부터 6경기에서 9⅓이닝 동안 4개의 안타만을 내주며 무사사구 비자책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김준기 전력분석 과장 역시 "김선규가 시즌 초 페이스가 떨어졌으나 5월 들어 볼 끝에 힘이 생겼다. 아직 스피드가 일본 때처럼 나오진 않지만 공 끝의 움직임이 좋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이동현 역시 최근 직구 구속이 147km까지 상승했다. 볼 끝의 움직임도 시즌 초 부진했을 때와 달리 확실히 좋아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공이 가운데로 몰리는 경향이 있다.
한희 역시 시즌 초 어깨 통증을 극복하고 1군에 복귀해 안정된 구위를 자랑하고 있다. 지난 6일 대구 삼성전에서 2⅓이닝을 1사사구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박종훈 감독을 흡족하게 했다. 12일 김광수가 흔들릴 때 1루측 LG 불펜에서는 한희가 몸을 풀고 있었다. 경기 후 박종훈 감독은 "혹시 있을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 준비를 시켰다. 교체할 의사는 없었다"고 잘라 말했지만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점은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LG는 이들 네 명만 적시적소에 잘 활용만 해도 임시방편으로 뒷문을 대체할 수도 있다.
▲리즈-봉중근 중 한명을 마무리로?
또 다른 대안은 올 시즌 선발 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선발 로테이션에 있는 레다메스 리즈(28)와 봉중근(31) 중 한 명을 뒤로 돌리는 것이다.
리즈는 올 시즌 한국야구에 진출해 선발로만 8경기에 등판 2승4패 평균자책점 3.96을 기록 중이다. 선발투수로서 성적은 평범하다. 그러나 리즈는 투수로서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장점을 지녔다. 160km 강속구를 짧은 이닝 동안 언제든지 뿌릴 수 있다.
실제로 리즈는 지난달 한화와 시범경기에서 160km 강속구를 뿌리며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고 파이어볼로로 등극했다. 한국으로 건너오기 전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에서 선발 및 중간계투로서 경력이 있다. 리즈는 마무리 투수로서 가능성은 보여주고 있지만 뒷문을 잠근 경험이 없기 때문에 박종훈 감독도 고민할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후보는 '에이스'봉중근(31)이다. 봉중근은 12일 한화전에 선발 등판해 6⅓이닝 동안 안타를 한 개만 맞고 사사구 3개를 내주며 무실점으로 호투 시즌 첫 승을 거뒀다. 전성기 때의 140km 중후반의 직구 스피드는 나오지 않았지만 투심 패스트볼을 던져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아내는 기교투수로서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봉중근이 마무리투수로의 최대 장점은 빼어난 위기 관리 능력이다. 메이저리그 경험 뿐 아니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 2008 베이징 올림픽 등 풍부한 국제 대회를 통해 마운드 위에서 항상 여유가 넘친다. 주자 견제 능력과 수비 능력은 최고다. 그러나 아직까지 구위가 100% 회복되지 않았다는 점, 더불어 봉중근은 몸이 늦게 풀리는 스타일이다. 마무리 투수는 몸이 빨리 풀려 첫 타자부터 자신의 공을 뿌려야 하기 때문에 박 감독 역시 쉽게 봉중근을 마무리로 돌릴 수 없다.
더불어 현재 선발로서 안정된 모습을 보이는 리즈와 봉중근을 빼 마무리로 돌려 이들이 제 역할을 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자칫 잘 돌아가고 있는 선발까지도 흔들리면 더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LG는 13일 현재 19승 14패로 SK(21승9패)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3위 두산과는 두 경기차로 달아나 조금은 여유도 생겼다.
박종훈 감독이 생각하는 최상의 방법은 김광수가 정상적인 컨디션을 회복해 마무리 투수로 굳건하게 서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과연 박종훈 감독은 어떤 결단을 내릴까.
agass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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