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찬이처럼 되면 좋죠. 하지만 그보다 지금은 이 페이스를 유지하고 싶을 뿐입니다".
한화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5년차 우완 투수 김혁민(24) 때문이다. 김혁민은 지난 13일 대전 삼성전에서 선발로 나와 6이닝 2피안타 1볼넷 6탈삼진 1실점으로 역투하며 5-1 승리와 함께 시즌 첫 승을 신고했다. 지난 2009년 9월25일 대전 삼성전 이후 1년7개월18일만의 승리. 지난 5일 대전 SK전에 이어 2경기 연속 호투하며 우완 파이어볼러로서 잠재력을 제대로 확인시켰다.
▲ 영점 잡힌 파이어볼러

무엇보다 돋보인 건 특유의 구위를 잃지 않으면서 제구가 안정됐다는 점이다. 삼성전에서 김혁민은 81개 공 중에서 50개를 직구로 던졌다. 직구 최고 구속은 150km. SK전에서도 83개 중 61개의 공을 직구로 승부했는데 최고 149km가 나왔다. 지난해 어깨 부상에 시달렸지만 구위는 오히려 더 좋아진 느낌이다. 김혁민 스스로도 "이상하게 공이 전보다 빨라진 느낌"이라고 했다. 지난해 시즌을 일찍 접은 뒤 재활을 충실하게 잘 소화한 덕분이다. 사실 김혁민의 구위는 이미 인정받은 자질이었다. 그런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건 결국 제구 때문이었다.
김혁민은 지난해까지 데뷔 후 4년간 9이닝당 볼넷이 평균 5.3개에 이를 정도로 제구가 들쭉날쭉한 투수였다. 그런데 올해는 2경기에서 11⅔이닝을 던져 볼넷이 2개밖에 나오지 않았다. 9이닝으로 환산할 경우 평균 1.5개로 3배 가까이 줄였다. 2경기 연속 1볼넷 경기를 펼친 것이다. 한대화 감독은 "다른 것보다도 볼넷을 주지 않는 점이 참 마음에 든다"고 할 정도로 눈에 띄게 좋아진 대목이다. 이에 대해 김혁민은 "볼을 빼지말고 승부하라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나도 볼넷주는 건 정말 싫다. 포수 미트만 보고 가운데로 던지는 게 효과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 어떻게 영점이 잡혔나
김혁민은 "2군에서 정신을 차렸다"고 말했다. 그를 전담 지도한 사람은 '210승 투수' 송진우 2군 투수코치. 김혁민은 "투구시 고개가 많이 돌아갔는데 송진우 코치님과 그 부분을 보완하는데 힘썼다. 그리고 힘빼고 던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고개가 포수 쪽으로 향하고 쓸데없는 힘을 줄임으로써 컨트롤이 향상됐다. 송진우 코치는 기술적인 것뿐만 아니라 2군 선수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올해 목표를 직접 종이에 쓰도록 하는 등 정신적인 면도 강조했다. 김혁민은 "한 번은 목표를 종이에 썼었는데 집에 두고 오는 바람에 제출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틀간 2시간씩 러닝만 했다. 유니폼 하의와 스파이크를 연결하는 고무가 닳도록 뛰었다. 그때 정신차렸다"며 웃어보였다.

1군에 올라온 뒤에는 한용덕 투수코치와 정민철 투수코치로부터 투구시 오른쪽 뒷다리를 세우고 던지라는 지시를 받았다. 공을 던질 때 조금이라도 더 힘을 싣고, 릴리스 포인트까지 제대로 공을 채기 위해서는 뒷다리의 힘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150km 파이어볼러의 영점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삼성전에서 김혁민은 바깥쪽과 몸쪽 자유자재로 낮게 꽂아넣으며 삼성 타자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김혁민은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한 것이 독을 품는 계기가 됐다. 2군이 분위기도 좋고 괜찮지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힘줘 말했다. 2군에서 보낸 시간이 그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천금과 같았다. 그래도 선수는 1군에서 빛을 보는 법이다.
▲ 제2의 차우찬이 될 것인가
삼성 에이스 차우찬은 지난해 5월까지 그저 그런 유망주에 불과했다. 몇 년간 꾸준하게 기회가 주어졌지만 좀처럼 알 껍질을 깨고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27일 목동 넥센전 승리를 시작으로 전혀 다른 투수가 됐다. 어느 순간 폭풍 성장했고 이제는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에이스의 위치까지 왔다. 정말 한순간이었다. 차우찬 역시 김혁민과 마찬가지로 공은 빠르고 잠재력은 풍부하지만, 제구가 불안하고 자신감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공격적으로 승부하지 못하고 피해가는 새가슴이라는 소리도 똑같이 들어야 했다. 하지만 차우찬이 성장한 뒤로는 그런 소리가 쏙 들어갔다. 김혁민은 1년 늦게 프로 데뷔했지만 차우찬과 1987년생 동갑내기다.
김혁민에게 '차우찬도 갑자기 확 떴다'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김혁민은 "나도 (차)우찬이처럼 확 뜨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보다 페이스를 잘 유지하고 싶다. 계속 하다 보면 자신감도 생기고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정민철 투수코치는 "(김)혁민이가 첫 승을 해서 기분이 좋지만 진작 이렇게 던져야 할 투수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두 번째 등판에서 승리를 했고, 본인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가 정말 기대된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한대화 감독도 "공을 보니까 다른 팀에서 쉽게 공략하지 못하겠더라"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영접 잡힌 파이어볼러 김혁민의 시대가 도래할까. 유망주의 성장은 정말 한순간이다. 이제 김혁민을 두 눈 뜨고 제대로 봐야 한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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