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이한테 많이 배웠다. 재미있게 승부했고 후회는 없다".
삼성 에이스 차우찬(24)에게 지난 14일 대전 한화전은 잊을 수 없는 한판이었다. 이날 동갑내기 '괴물' 류현진과 선발 맞대결한 차우찬은 6⅔이닝 7피안타 2볼넷 7탈삼진 4실점으로 역투했다. 특히 총 투구수가 무려 138개로 개인 한 경기 최다기록을 갈아치웠다. 최고 148km 직구와 138km 고속 슬라이더로 7회 2사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최선의 피칭으로 사자 군단 에이스의 자존심을 지켰다.
▲ 에이스의 자존심 138구

평소 차우찬을 생각하면 최고의 피칭은 아니었다. 1회 시작과 함께 강동우에게 선두타자 홈런을 맞았고 3~4회에도 투아웃을 잡아놓고 장성호와 한상훈에게 적시타를 맞았다. 경기 초반 타선이 점수를 내줬지만 이를 지키지 못하며 동점을 허용했다. 4회를 마쳤을 때 투구수는 95개. 3회 32개, 4회 27개를 던지며 힘을 뺐다. 투구수 관리에 실패했고, 5회를 채우면 마운드를 내려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차우찬은 5회 1사 2루 위기에서 장성호와 최진행을 연속 헛스윙 삼진 처리하며 살아났다. 6회에 이어 7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6회를 마쳤을 때 투구수는 124개. 류중일 감독은 오치아이 에이지 투수코치를 통해 차우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의향을 물었다. 차우찬은 당연히 오케이였다. 그는 "뒤로 갈수록 볼이 더 좋아지고 투구 밸런스가 맞아갔다. 6회 끝난 뒤 감독님께서 물어보셨는데 내가 더 던지겠다고 말씀드렸다. 특별히 힘든 건 없었다"고 설명했다. 류중일 감독도 "볼끝이 갈수록 좋았다"고 평가했다.
7회 1사 후 이희근에게 좌월 2루타를 맞은 차우찬은 강동우를 좌익수 뜬공으로 처리한 뒤 마운드를 내려갔다. 지난달 14일 잠실 LG전에서 기록한 125개를 넘는 개인 한 경기 최다 투구수 138개를 던진 뒤였다. 차우찬은 "초반에 투구수가 많았던 게 아쉽다. 마음 같아서는 7회까지 막고 싶었는데 투구수가 너무 많았다. 마무리하지 못한 건 아쉽다"고 말했다. 류중일 감독도 "나도 7회까지는 우찬이한테 맡기고 싶었다. 하지만 투구수가 많았고 마침 우타자 이여상 타석이라 어쩔 수 없이 내려야 했다"며 에이스의 자존심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래도 류 감독은 "우찬이가 잘 던져준 게 승인"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차우찬의 138구는 에이스의 자존심이었다. 가장 최근 삼성에서 가장 많은 투구수를 기록한 투수는 지난 2003년 대구 KIA전에서 9이닝 동안 147구를 던지며 완투패한 '영원한 에이스' 배영수였다.

▲ 류현진에게 배웠다
차우찬은 경기소감으로 가장 먼저 "많이 배웠다"고 입을 뗐다. 무엇을 배웠을까. 그는 "현진이한테 한 수 배웠다. 현진이는 정말 잘한다"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공도 공이지만 완급조절을 잘하더라. 투구할 때 밸런스도 일정하고 위기에서도 잘 던졌다. 역시 현진이는 좋은 투수였고 정말 재미있는 승부를 했다. 후회없다"는 것이 차우찬의 말. 이날 류현진은 8이닝 119구 7피안타 2볼넷 6탈삼진 5실점(4자책)으로 패전투수가 됐지만 마운드에서 버티는 능력은 차우찬을 능가했다.
이날 류현진은 홈런만 3방을 맞았다. 모두 높게 형성된 실투였다. 특히 8회 진갑용에게 맞은 역전 투런 홈런은 체인지업이 떨어지지 않고 높게 들어와 장타로 이어졌다. 하지만 차우찬은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류현진의 노련함에 주목했다. 이날 류현진은 득점권에서 9타수 1안타로 삼성 타선을 틀어막았다. 차우찬이 3~4회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적시타를 맞은 것과 대조적인 모습. 차우찬은 "점수를 안 주면 이기겠구나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류현진의 완급조절도 차우찬이 인상적으로 바라본 대목이었다. 이날 류현진은 6회에 최고 150km 강속구를 찍었다. 완급조절로 이닝을 거듭할수록 볼이 빨라지는 류현진 특유의 피칭이었다. 하지만 차우찬도 만만치 않았다. 경기 초반 밸런스가 좋지 않아 투구수가 급증했지만 5회 이후부터 안정감을 보였다. 이날 차우찬은 138개 공 중 직구가 65개로 절반도 되지 않았다. 대신 슬라이더(42개)·커브(9개)·체인지업(12개) 등 변화구 비율을 높게 가져갔다. 류현진은 119개 중에서 직구가 66개였고 체인지업(19개)·슬라이더(12개)·커브(12개) 순으로 던졌다.
결과만 놓고 보면 차우찬은 먼저 마운드를 내려갔고 류현진에게 근소하게 판정패했다. 차우찬도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팀이 이겨서 다행이다. 패전투수가 될 뻔 했는데 진갑용 선배님이 도와주셨다. 정말 감사하다"며 웃어보였다. 비록 에이스 대결에서 승리하지 못했지만 차우찬은 138구 역투로 사자 군단 에이스의 기백을 보였다. 류중일 감독은 "오늘 경기를 계기로 우찬이가 더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큰 경기는 선수를 더 크게 만드는 법이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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