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선우, "주도적 변화? 바뀌어야 했다"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1.05.16 07: 05

"(정)재훈이 던지는 거 보면서 나도 모르게 '와, 와' 그래요. 나는 그만큼 제구력이 좋지는 않으니까".
 
팀 마다 33~36경기를 소화한 현재. 완봉승을 거두며 이닝이터의 면모를 보인 투수는 8개 구단을 통틀어 세 명이다. 그 가운데 두 명은 트래비스 블렉클리(KIA)와 벤자민 주키치(LG)로 모두 외국인 투수다. 한 명의 국내 투수는 류현진(한화)도 김광현(SK)도 아니다. 바로 '써니' 김선우(34. 두산 베어스)다.

 
김선우는 지난 8일 잠실 롯데전서 9이닝 동안 단 94개의 공을 던지며 7피안타(탈삼진 3개, 사사구 2개) 무실점으로 국내 프로무대를 밟은 이후 처음으로 완봉승을 거뒀다. 그의 올 시즌 성적은 4승 2패 평균자책점 1.56(1위, 16일 현재)으로 굉장히 뛰어나다.
 
또한 현재 선발 22이닝 무실점으로 연일 호투를 자랑 중. 5월 2승 무패 평균자책점 0으로 5월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두산이 거둔 3승 중 2승이 바로 김선우가 거둔 무실점 승리다. 2008년 15억원을 받고 에이스로 기대를 모았으나 첫 2년 간 아쉬운 모습을 보인 김선우는 지난해 13승에 이어 투수진 맏형이자 에이스 노릇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김선우의 최근 투구에 대해 "2아웃 이후에 안타를 맞기도 하지만 주자가 2루를 밟은 이후에는 결정타를 맞지 않기 위해 공을 낮게낮게 제구한다. 야구에 눈을 뜬 것 같다"라며 칭찬했다. 15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김선우는 파워피처에서 기교파 투수로 변신 중인 스스로를 자평하는 동시에 바뀐 내용도 같이 이야기했다. 타선 침체 속 연패 스토퍼 노릇을 하고 있는 에이스의 이야기는 분명 의미가 있었다.
 
▲ 빠져나갈 곳 없는 현실, 나를 바꿨다
 
사실 아마추어 시절부터 김선우는 상대적으로 훨씬 빠른 직구를 앞세워 타자를 상대하는 에이스였다. 휘문고-고려대 시절은 물론 1997년 보스턴과 계약을 맺은 이후로도 그는 최고 156km에 이르는 광속구를 자랑하는 투수였다.
 
"변화라. 제가 인위적으로 변화한 것이 아니라 변화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어요. 몇 년 전만해도 변해야 된다는 필요성을 못 느꼈는데 지난해부터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전에는 '직구가 있으니까'라는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변화구 조차 안 먹히면 '뭘 던져야 하나'하는 생각도 드니까".
 
실제로 김선우는 2009시즌까지만 하더라도 경기 당 150km 이상의 직구는 꼬박꼬박 던지던 투수였다. 결정적인 순간 포심 패스트볼이나 투심 패스트볼, 싱킹 패스트볼 등 직구 변종 구질을 거의 결정구로 삼던 김선우였으나 첫 2년 도합 17승에 평균자책점은 4점 대 중후반이었다. 아프지 않는 한 로테이션은 지켰으나 경기 당 기복도 심했고 에이스 수식어와는 거리가 있었다.
 
"되도록 스트라이크 존 모서리에 변화구를 꽂으려고 해요. 적어도 타자와 3구 이내에 결판낸다는 생각인데 가운데로 몰리지 않게, 방망이가 나오게 만드는 투구를 하려고 합니다. 그만큼 낮게 던지는 게 우선이지요. 난 제구력이 좋은 투수는 아니니까 최대한 낮게 던지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양)의지가 고생을 좀 하지요. 워낙 바운드되는 공이 많아져서 의지가 그걸 다 막아야 되니까. 힘든 건 나도 알지. 그럴 때는 이렇게 이야기해요. '야, 형도 좀 살자. 이렇게 해야 살 수가 있으니까 행여나 패스트볼이나 폭투 나와도 네가 너무 신경쓰지 말아라'라고.(웃음) 의지 블로킹 지난해보다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 손목 각도 높여 위력도 높인다
 
지난 시즌이 끝난 후 김선우는 매번 자신의 발목을 잡던 무릎 통증 및 후반기부터 찾아왔던 팔꿈치 통증을 완화하는 데 힘썼다. 많은 훈련을 하기보다 몸 상태를 100%로 만드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러다보니 무릎 상태는 최근 몇 년 간 가장 괜찮은 상황. 전재춘, 홍성대 트레이너 또한 김선우의건강한 무릎을 위해 매 경기 음지에서 힘을 쏟는다.
 
"무릎 지탱이 되다보니 좀 더 팔을 세운 상태에서 투구를 할 수 있게 된 건 사실이에요. 더 중요한 것은 손목 각도를 이전보다 높였다는 게 요지입니다. 공을 채는 순간 손목 각을 높여서 변화구의 낙폭도 높이고 볼 끝도 좀 더 살리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기본적인 마운드에서의 성정은 오히려 바뀌지 않았다. 이미 국내 무대를 처음 밟을 때도 "탈삼진보다는 빠르게 범타 처리하는 게 성격 상 맞다"라는 이야기를 했던 김선우는 지금도 적은 투구수 속에 효과적 투구를 하고자 노력한다. 다만 목표로 가는 수단이 직구 위주에서 변화구 비중을 높인 쪽으로 바뀐 것이다.
 
"최대한 마운드에서 내가 생각했던 것을 실전에서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연습하다가 어떤 구종이 좋겠다 싶으면 바로 경기에서 써보려고 하고. 프로는 결국 이겨야 인정을 받잖아요. 당일 컨디션을 중요시하면서 최대한 몸이 좋은 상태에서 이기는 데 집중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되도록 낮게 던지려고 하고 떨어지는 변화구도 가능한 한 많이 던지고".
 
8경기를 치른 현재 김선우의 피안타율은 2할5푼6리로 지난해 2할7푼7리에 비하면 크게 낮아지지 않았다. 눈에 띄는 것은 피장타율이 3할8푼에서 3할3리로 쭉 떨어진 것. 직구 위주에서 변화구를 최대한 섞어 낮게 던지려는 노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 에이스 수식어? 꾸준해야 얻을 수 있는 것
 
류현진이 약한 팀 전력으로 인해 고전 중이고 김광현이 어깨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간 현재. 김선우는 박현준(LG), 차우찬(삼성) 등과 함께 현재 8개 구단 국내 투수 선발 요원 중 가장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투수 중 한 명이다.
 
사실 김선우는 국내 무대를 밟은 이후 꾸준히 에이스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했을 때 지난해를 제외하면 에이스라고 표현하기는 뭔가 아쉬움이 있었다. 경기 당 기복이 크다는 점이나 높은 평균자책점이 발목을 잡았다.
 
"아직 초반 몇 경기일뿐인 데 뭘. 몇 년 동안 꾸준하게 제대로 된 성적을 올리면서 널리 좋은 평가를 받아야 진짜 에이스입니다".
 
우리 나이 서른 다섯. "구위 하락도 그렇고 등판 후 회복 속도가 확실히 늦어졌다"라며 고개를 흔든 김선우지만 송진우(한화 코치) 등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한 선배들은 그의 좋은 롤모델이다. 특히 송진우도 빠른 공이 실종된 순간 제구력과 뛰어난 완급조절 능력으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오랫동안 '회장님의 호투'를 보여줬다.
 
"제 입장에서는 송진우 선배처럼 오랫동안 활약하신 분들이 정말 좋은 귀감이지요. 지금은 확실히 단순한 직구 스피드보다 체감효과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최고 140km를 던져도 어떤 타이밍에 어떤 코스로 변화구를 배분하느냐가 직구의 체감효과를 더욱 높여줄 테니까".
 
구위가 떨어져 바뀔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꺼낸 김선우지만 그는 점점 팔색조 구종을 갖춘 투수로 진화 중이다. 150km대 직구를 잃은 대신 좀 더 많은 변화구 옵션을 지니고 마운드에 오르는 김선우는 2011시즌 팀과 자신의 동반 해피엔딩을 꿈꾼다.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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