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잠실구장. 8회초 시작 전까지 경기는 두산의 8-0 일방적인 리드로 흐르고 있었다. 한화는 3회 이대수가 첫 안타를 터뜨린 것을 끝으로 단 한 명의 타자도 출루하지 못했다. 두산 마운드에 철저히 눌린 것이다.
모두가 맥 빠지거나 경기장을 빠져나갈 법도 한 그때. 3루측 한화 응원석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한화팬들이 우렁찬 목소리와 박수소리로 단합해 육성으로 응원의 진수를 보여준 것이다.

응원의 기본은 음악과 도구다. 흥을 돋우는 음악과 신나게 두드릴 수 있는 막대 풍선은 응원에 있어 기본적인 요소다. 때로는 롯데처럼 신문지가 응원도구가 되지만 기본적으로 음악과 도구라는 필수 요소가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한화의 8회 응원은 남달랐다. 음악을 끄고, 막대 풍선을 내려놓은 채 오직 육성과 맨손으로 응원하는 것이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승패를 떠나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이날 경기에서도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8회 2사까지 두산 마운드에 단 1안타로 막혔던 한화는 추승우의 중전 안타를 시작으로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후속 타자 이여상이 이날 경기 첫 볼넷을 얻어내 만들어진 2사 1·2루 찬스에서 대타 신경현이 우전 적시타를 터뜨리며 추승우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승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1점이었지만 그 1점에 3루측 한화팬들은 그 어느 때보다 환호했다. 팬들의 응원 힘으로 만든 득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화만의 문화가 된 8회 육성응원은 지난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팬들 사이에서는 응원의 신으로 유명한 홍창화 응원단장의 아이디어였다. 홍씨는 "롯데하면 신문지 응원이 있듯이 한화만의 응원 문화를 만들고 있다. 8회 만큼은 막대 풍선을 내려놓고 음악도 틀지 않는다. 맨손으로, 육성으로 한화만의 응원을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승패에 관계없이 8회에는 육성과 맨손으로만 응원했고 이제는 한화만의 응원 문화로 만들어졌다. 경기장을 자주 찾는 팬들도 이제는 8회만 되면 자동으로 도구를 내려놓고 목소리를 풀어 놓는다.
홍씨는 "개인적으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응원하기 가장 힘들다. 그럴 때는 아예 '전광판을 보지 말라'고 팬들께 말한다. 야구장에 오셨으면 다들 한화를 좋아하시는 것 아닌가. 그때부터는 야구 자체를 즐기려고 한다. 승패를 떠나 야구를 즐기자는 마음이다. 멋진 플레이가 나올 때마다 박수를 보내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 한화에게 8회는 약속의 시간이 되고 있다. 팬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경기장에 울릴 때마다 선수들의 가슴에도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다.
한화는 최근 팬들이 직접 움직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구단의 비전없는 리빌딩에 지속적으로 불만과 질타를 보내며 여론을 형성했고, 결국 경영진 교체와 대대적인 팀 개혁을 이끌어냈다. 이뿐만 아니라 직접 사비를 털어 구단과 선수단을 위해 고사까지 지낼 정도로 정성이 대단하다. 여기에 8회 육성응원으로 경기장에서도 직접 선수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화를 보면 팬들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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