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사상」기획자와의 일문일답
수행자의 견해로 세상의 기원을 설명하면서도 현대적인 필치로 국제정세와 환경위기, 한국의 미래를 합리적인 인과관계로 풀어낸 「석문사상」이 화제다. 「석문사상」의 제작을 담당한 출판 기획자 이승우(38) 대표와의 일문일답.

-근래 보기 드문 소재다. 기획 과정에서 어떤 고민이 있었나?
▲마야, 잉카의 전승과 서구 수행을 바탕으로 한 <월드쇼크 2012>라는 외서가 한국에서 성공한 것이 흥미로웠다. 동양에도 오늘날의 흐름을 읽은 선견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잊고 있다. 격변의 오늘을 궁극적 관점에서 다룬 한국의 미래예측서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동양의 전통적인 정신문화를 말하는가?
▲그를 넘는다. 세계 ‘정신문화의 원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선도와 카발라를 보자. 선도는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로 정기신을 든다. 정精은 아랫배 하단전, 기氣는 가슴의 중단전, 그리고 신神은 미간(인당)에서 관장한다. 이 셋을 연마해 궁극의 경지에 이른다. 카발라에는 네페쉬Nefesh와 루아Luah, 네쉐마Neshema가 있다. 네페쉬는 아랫배, 루아는 가슴, 네쉐마는 미간에서 관장한다. 셋을 연마해 경지에 이른다. 선도의 정기신과 동일한 시스템이다.
과연 어떻게 된 것일까? 실증적 관점에서는 두 문화 간 교류가 없었다는 게 정설이다. 인류 공통의 문화를 인정하면 교류가 있었다는 모순이 생기고, 부정하면 객관적 실체를 인정하는 모순이 생긴다. 즉 최소 인류 공통의 문화 혹은 객관적 실체, 둘 중 하나는 사실이다.
언어적 표현이 그러할 뿐 사실상 「석문사상」은 ‘선도’적인 표현을 넘어, 동서양을 초월하는 인류 원형의 정신문화나 그 어떤 객관적 실체를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위기 너머 희망의 미래를 말하고 있다. 지금의 혼란을 보면 과연 희망적일 수 있는가?
▲수행자들은 지구종말론이 흥미 위주의 가십거리로 설명된다는 것을 큰 문제로 본다. 「석문사상」에서 밝혔듯이 예언이란 확정된 미래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확정될 미래를 바꾸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마야, 잉카의 예언도 지구의 종말을 확정한 것이 아니다.
어둡게 생각하면 어둡게 끝난다. 그러나 어둠을 성찰의 자양분으로 삼는다면 미래는 변한다. 섭리가 그러하다. 큰 틀은 정해져 있지만, 희망적으로 가느냐, 절망적으로 가느냐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 그래서 「석문사상」은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수행이라는 방법론이 지배적 패러다임은 아니다. 구시대적 유물로 보는 이도 적지 않은데?
▲과학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지배적 패러다임이 된 것이 아니다. 종교가 번성할 때도, 과학, 즉 자연주의적 관점의 철학은 존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사람들 눈에는 과학이 조악한 미신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과학이 발달되면서 그렇게 되었다는 견해도 맞지만, 반대로 보면 세상의 변화 때문이다.
종교로도 충분히 세계의 질서가 유지될 때는 과학의 역할은 미미했다. 하지만 인구와 생산량의 증가로 복잡다단한 물질적 시스템이 요구되면서 과학의 위상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과학은 여전히 유용한 인류의 자산이지만, 과연 영원한 지배적 패러다임이 될 수 있을까. 과학 이후의 패러다임이 있지 않을까?
「석문사상」 그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을 통합적 관점에서 제시하는 책이다. /이대연 객원기자 osenlif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