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라 부를 수 있을까
홍재원|372쪽|일리
95학번 서울대생들의 고민·방황

신문기자 경험 살려 사실적 표현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서울대에 들어가기란 쉬운 일이다. 가속페달만 살짝 밟으면 된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쉽게 통과할 수 없는 곳이었다 … 삼각형 교문은 쉽사리 뒤편으로 멀어졌다.” 승표는 오랜만에 학교를 찾았다. 한국신문 기자의 자격이다. 그렇게 통과한 교문 안에선 장구한 세월의 흐름에서 볼 때 불과 얼마 전이었을 그가 속해 있던 시절들이 펼쳐진다.
서울대를 배경으로 담은 장편소설이다. 95학번 서울대생들 등장시켜 그들의 고민과 사랑을 잔잔히 스케치해 청춘의 서설이자 후기로 꾸렸다. 학생운동에 회의적인 주인공 승표를 중심으로 운동권에서 존재감을 찾는 윤호와 은수, 또 승표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세연 등이 얽힌 이야기를 조명한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닌 이들이 혼돈스럽지 않은 시절을 보낸 적이 있겠는가마는 1990년대 중반은 급격한 변화를 겪은 사회·정치·경제의 한 가운데 있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국면이었다. 1980년대 치열하게 맞섰던 독재권력은 사라졌고, 운동은 적을 잃으면서 방향도 잃었다. 소설은 급진적 인식의 변화가 요구되던 시기에 멈춰지지 않는 고민과 방황을 거듭하던 그 시절, 결국 작가 자신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르는 장면들을 그려낸다. 외형은 연애소설이지만 그 내부엔 세상을 탐닉한 감춰진 세계관이 숨어 있다.
가장 강력했던 메가톤급 충격은 1997년 들이닥쳤다. ‘황폐해진 캠퍼스’, 취업기회는 완전히 사라지고 낭만은 회상조차 멋쩍은 오래된 기억이 돼버렸다. 도서관에 모여든 학생들의 풍경도 일시에 전환됐다. 국가와 사회, 문학과 문화를 논하던 책들이 놓였던 자리를 토익, 고시서적이 채워나갔다. ‘신자유주의를 온몸으로 거부해야 합니다’ ‘구제금융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 제국주의의 음모입니다’. 여전히 캠퍼스를 울리는 외침이 있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로 떠다녔다.
고난의 그 기원은 사회에 나와서까지 이어졌다. 소설은 철부지처럼 대학시절을 보내고 가장 쉽게 사회에 편승한 아마추어 인생을 빗대 꼬집는다. “나는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기자가 되고 싶었다는 놈들이 제일 싫더라. 기자가 무슨 독립투사야? 프로가 뭔지 알아? 돈값을 하는 사람이야. 회사에 얼마나 잘 맞출 수 있는지가 프로의 핵심자격이다.” 그리고 묻는다. 이 모두를 청춘이라 부를 수 있을까.
소설 속 주인공처럼 작가의 신문기자 경험이 바탕이 됐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1990년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며 그 시기를 지나온 이들의 생각과 행동들을 현실감 있게 전해준다. 그 때문인가. 책 서두에 붙인 일러두기가 인상적이다. “이 글은 허구의 소설이다. 꾸며낸 이야기를 역사적 기록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소설은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
그 ‘허구의 소설’ 끝에 붙였다. “청춘은 강하다.” 그렇게 방황의 나날에서 인간의 성숙과 존엄이 더욱 공고해진다고 고민하는 청춘을 위무한다. 그리곤 소설 속 인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세상에 외친다. “살아있어라. 다음 세대가 되어 그 다음 청춘을 위로해줘라.”
euanoh@ieve.kr /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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