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 밤을 밝히는 사람들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1.05.20 19: 13

[이브닝신문/OSEN=김중기 기자] 곧 날이 어둑해집니다. 지금 당신은 어디로 가나요. 내일을 위한 휴식인가요. 하지만 서울의 밤은 낮만큼 분주합니다. 터널에서,? 클럽에서, 시장에서 당신이 잠든 시간에.
막차가 끊긴 시간
그들의 하루가 시작된다
1. 지하철 터널 물청소
지난 1일(일) 0시20분 7호선 보라매역. 승강장 끝 스크린도어가 열렸다. 형광등이 터널을 희미하게 비춘다. 군데군데 금속 박스가 걸음을 방해한다. 콘크리트 벽을 따라 15m쯤 걸었을까 선로와 선로 가운데 숨은 선로가 있다. 노란 고압살수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막차가 끊긴 시간, 터널 물청소가 시작된다. 2005년까지는 사람이 직접 물을 뿌렸다. 외주업체가 많은 인력을 동원해 하룻밤 꼬박 일해도 500m밖에 하지 못했다. 살수차는 4~5km,
 
도시철도 전 역을 1년에 평균 두 번 씻어낸다. 선로마다 한 번꼴이다. 이날은 보라매역에서 숭실대입구까지 4km, 왕복 8km를 청소한다. “방도 1번 닦는 거하고 2번 닦는 거하고 차이가 있으니까요. 평일은 두 번 할 시간이 없어요.”
‣ 0시34분 보라매역…“출발하시죠”
최고선임 이경남(42) 장비팀 대리가 출발 전 점검을 마쳤다. “오일이 새나, 차륜 고임목은 제거했나, 살펴보는 겁니다.”?살수차 길이는 17m, 지하철 1량(20m)보다 짧다. 조종석은 덤프트럭 운전석만큼 높다. 양 방향 기관실에 2명씩 4명이 한 조를 이룬다.
시계가 0시34분을 가리켰다. “출발하시죠.” 이 대리가 말했다. 김인철(54)씨가 조종간을 잡았다. 10년째 계약직인 김씨는 4년 전 무기 계약을 맺었다. 올해는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있다. 그는 여수에서 건축자재 가게를 했었다. 장사가 안돼서 서울까지 오게 됐다.
“정위 진로 이상무.” 차가 움직인다. 숨은 선로에서 새벽 운행을 기다리는 전철 코앞까지 바싹 다가갔다. 정지. 반대편 기관실에서 운전을 시작했다. 차는 변경된 선로를 따라 본궤도에 올랐다. 기자가 탄 곳은 진행방향의 반대쪽을 보고 있다. 속도는 시속 4km, 어른이 조금 빨리 걷는 정도다. 이 대리는 살수 스위치를 켰다. 물 뿌리는 굉음이 적막을 깨트린다. 그는 수시로 분사 압력을 조절했다. 운전은 양방향에서 하지만 살수는 이 대리 자리에서만 가능하다.
김현식(42) 주임이 인터폰으로 신대방삼거리역 진입을 알려왔다. 스크린도어를 조심해야 한다. 살수 파이프 최대 압력이 300기압, 평균 30기압으로 물을 뿌리기 때문이다.
‣ 기관실 습도는 장마 수준
안전모 사이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창에는 작은 물방울이 뿌옇게 끼었다. 습도가 장마철 수준이다.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는 가동하지 않았다. 한여름에는 에어컨을 돌리지만, 웃통을 벗고 일할 때도 있단다. “이 차는 괜찮은데 사람이나 장비 실어 나르는 모터카는 더 덥죠.”
이 대리는 5호선이 첫 운행을 시작한 1995년 입사했다. 선로를 관리하는 보선팀에 있다가 기계가 좋아서 2년 전 장비팀으로 옮겼다.
승객들이 알아주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대신 땅속만 쳐다보고 생활하니 조금 갑갑한 감은 있어요.”
“앞에 작업자 있습니다. 물 좀 꺼주세요.” ‘빠아앙’ 기적을 울렸다. 이 대리는 가장 아찔했던 순간을 차 바로 앞에서 외부 작업자들이 슥 지나갈 때라고 말했다. “열차는 브레이크를 밟아도 쭉 미끄러져요. 아무래도 차가 느리게 가니까 그 위험을 잘 모르더라고요.” 터널에는 이동통신 장비 등 다양한 전자장비가 들어가 있다. 야간에 점검 및 설비공사가 이뤄진다.
살수차가 움직임을 멈췄다. 1시42분. 물 뿌리는 굉음도 잦아들었다. 숭실대입구역이다. “김 주임님, 역사 올라갔어요?” “네 (박)남욱(38‧사원)씨 올라갔습니다.” 4개 역사를 이동하는데 약 1시간이 걸렸다.
‣ 터널에서 귀신 본 적은 있나?
조원들은 승강장 소화전 호수를 꺼내 살수차 물탱크에 연결했다. “탱크 용량이 25톤이에요. 보통 20톤에서 22톤을 뿌리는데 주말은 중간에 물을 보충해 한 번 더 뿌리죠.” 물 채우는 데만 보통 20분이 걸린다. 하지만 수압이 약한 곳은 40분에서 1시간이 걸리는 곳도 있단다.
김인철씨가 다시 조종간을 잡았다. 드디어 앞을 보고 달린다. 이 대리는 장갑으로 창에 서린 김을 닦았다. 시꺼먼 먼지가 묻어 나왔다. 김씨도 창을 닦았다. 까맣다. 작업 내내 방진마스크를 써야 한다.
‘터널에서 귀신 본 적 있나’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못 봤어요.” 또 ‘스크린도어 설치 전에는 자살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나.’ 이 대리 목소리 톤이 조금 올라갔다. “…어떤 승무원은 전철로 뛰어드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대요. 그 사람이 씩 웃고는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고…승무원이 무슨 죄입니까.”
역사 몇 개를 지났다. 승강장은 밤에도 환히 불을 밝혔다. 이곳은 시끄러우면서 적막하다. 3시2분 보라매역 승강장으로 들어섰다. “반위 진행 이상무.” 다른 쪽 선로로 이동한다는 의미다. 정지. 이날 마지막 물을 채운다. 기자는 역사로 올라왔다. 작업을 마친 이들은 3시50분 경 자동차를 타고 천왕차량관리소로 이동했다.
새벽 5시 보라매역이 잠에서 깬다. 셔터가 올라간다. 청소 아주머니는 부끄럽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첫차를 타러 오는 승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5시30분이 조금 넘자 숨은 선로에 대기하던 전철이 승강장으로 이동해 승객들을 태운다. 지난밤 막차를 운행한 기관사는 신풍역에서 선잠을 잤다. 전철이 출발한다.
두근두근, 음악을 틀 때까지
2. 홍대 앞 클럽 디제이
지난달 30일 홍대 앞,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클럽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반대로 인적 드문 길,? 클럽 오백 안은 한산했다. 40명이 채 안되어 보였다. 오백은 디제잉(Djing) 파티나 밴드 공연이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클럽이다. 한 낯선 외국인이 사진을 찍는 기자의 팔을 잡아당기며 함께 춤추자는 손짓을 했다. “아이 엠 워킹(I am working 나 일한다고).”
3시30분 DJ 준코코(Juncoco)가 부스에 들어갔다. 준코코는 클럽 써클(2008)과 베라(2011) 전속 DJ로 활동했다. 지금은 파티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프리랜서 DJ다. 그리고 24살의 휴학생이다. 파티가 끝난 토요일 새벽 그를 만났다.
‣ 왜 이름이 준코코인가=본명은 이준호다. 처음 디제잉 할 때 급하게 이름을 정하라고 해서 초등학교 때 이메일 주소를 그대로 썼다. 별 의미는 없다.
‣ 오늘 분위기 어땠나=장비는 열악해도 마음은 편했다. 마지막 타임을 좋아한다. 사람들을 최대한 끝까지 많이 머무르게 하는 데 보람을 느낀다.
‣ 하루 일상은=주말은 아침 7시, 8시 자고 오후 2시, 3시 일어난다. 평일에는 주말에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준비한다, 노래를 만들거나 많이 듣는다, 다른 DJ들을 만나 건설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술을 마시기도 한다, 아르바이트도 했는데 지금은 그만뒀다,
‣ 직장인들이 보기에 ‘쟤들은 논다’라고 느낄 수 있다=그건 ‘가수는 왜 노래 부르면서 돈 버느냐’는 말과 같다.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 솔직히 더 힘든 일은 있다. 그래도 모두 다 필요한 역할이고 현상 그대로다.
‣ 한 달에 얼마나 버나=클럽마다 다르다. 직장인만큼은 버는 것 같다. 전속은 안정적인데 파티는 항상 일이 있는 건 아니다. 평일에 일반 회사를 다니거나, 그래픽 디자이너 같은 프리랜서들이 주말에 파티만 뛰기도 한다.
‣ 클럽에서 대쉬하는 사람은 있나=그러면 참 좋겠지만…거의 없다. 쌍방향에서 눈빛이 오가야 가능한 일이다. 클럽에서는 여자를 안 만나려고 한다. 사람들이 실제의 자신을 좀 포장하는 것 같다. 즐겁게 노는 모습은 참 좋다.
‣ DJ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 반응은=나쁘게 보시진 않았다. 하지만 공부를 계속하기 원하신다. 군대 있을 때 ‘공부랑 같이 하는 게 능력 밖인 것 같다. 시간을 좀 달라’고 편지를 써 1년 휴학을 했다. 정신 차리라던 학교 친구들은 기업 인턴을 하면서 ‘너처럼 여러 가지 일을 해볼 걸’ 이렇게 점점 호의적으로 변했다.
‣ DJ를 시작한 2008년과 비교해 클럽들이 얼마나 달라졌나=과거에는 클럽마다 색깔이 더 다양했다. 지금은 클럽 수도 많아지고 경쟁을 하다 보니 갓 성인이 된 친구들에게 맞추는 경향이 있다.
‣ 인상 깊었던 밤은=2008년에 클럽 입장객 1000명을 찍었을 때다. 요즘은 클럽들이 워낙 커져서 1000명 찍으면 많이 했다 그 정도인데 그땐 영화 1000만 관객 달성한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많으면 파도치는 것처럼 보인다. 나한테도 이런 기회가 있구나 생각했다.
‣ 당신에게 밤이란=두근거림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깨어있는 동안 종일 설렌다…클럽에서 음악을 틀 때까지. 사람들과 춤추고 호흡하고 나는 그렇다.
“3만 3만! 3마안!”…시장의 랩퍼(경매사)
3. 가락시장 경매사
가락시장은 전국 농수축산물 도매시장 거래량의 49%를 차지한다. 산지에서 올라온 수산물, 과일 등이 야간 경매를 거쳐 시장 내 도매상가로 나뉘고 새벽 이곳을 찾은 소․도매업자들에게 다시 팔려나간다. 특히 경매 과정에서 각 물건의 시세가 결정된다. 지난 7일 새벽 가락시장을 찾았다.
“알라알락알락…3만 3만 3만 3만! 3마안!” 수산물시장에서 마이크를 든 경매사들이 ‘한밤의 랩 공연’을 펼친다. 알아듣기 어렵다는 점과 ‘관객’(입찰자)이 있다는 게 진짜 공연과 비슷하다. “양호, 양호, 양호 나와. 양호, 2만원 와라, 2만” 입찰이 시원찮을 땐 경매사도 몸이 단다. 24번 상인이 ‘에잇’하는 소리를 지르며 손짓했다. 낙찰이다. 경매사를 분신처럼 따라다니는 경매 보조자가 노트에 기록을 남긴다. 생선이 담긴 궤짝에 낙찰자의 번호나 상호가 적힌 쪽지를 놓고 나면 각 상점으로 배달될 준비가 끝난다.
디지털 경매도 있다. 매물이 놓인 길을 따라 경매사가 전광판 수레를 타고 지나가면 손짓 대신 무선단말기로 입찰하는 방식이다. 전광판에는 산지, 출하자, 단가, 낙찰자 번호 등이 뜬다. 2대의 전광판 수레가 한길에서 겹칠 때면 경매사의 목소리가 기묘한 화음을 이룬다.
새벽 3시10분, 한 도매상에서 마트 조끼를 입은 남자가 눈에 띤다. 물건 떼러 나왔다는 그는 잠은 언제 자냐는 질문에 낮에 토막잠을 잔다고 했다. 주차장에는 대형 활어차 기사가 막 차에 오르려 하고 있었다. 완도에서 왔다는 그는 바로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이동했다.
가락시장은 전기 수레의 천국이다. 약 가로 1m50cm 세로 4m50cm 크기의 1인승 삼륜차는 짐칸이 낮고 턱이 없어 물건을 빨리 싣고 내리기에 편리하다. 청과, 채소시장 쪽은 걷는 사람보다 전기수레가 더 많을 정도다. 사거리에서는 수레끼리 엉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강은철(23)씨는 0시부터 낮 12시까지 수입수산물 냉동 창고에서 일한다. 밤에 들어온 물건을 지게차로 냉동 창고에 옮기고, 시장 내 거래처 매장에서 주문이 오면 내주는 일이다. 대학교를 그만두고 올 2월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일을 배워서 무역업을 하고 싶어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아요.” 그는 “집에서 돈 안 받고 자수성가하려면 빨리 모아야 한다”며 “남들보다 학력이 모자라니 더 열심히 벌어야 한다”고 말했다.
밤을 밝히는 사람들이다.
haahaha@ieve.kr /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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