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인문학 현주소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한국 인문학은 죽어가고 있었다. 1987년 민주화와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 1990년대 물밀 듯이 밀려든 자유화 바람, 그리고 2000년대 신자유주의를 거치면서 점차 그 자리를 잃어갔다. 어디에 위치시켜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정체와 침체를 반복했다. 그러던 인문학이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거친 지표이기는 하지만 하나만 짚어보자. 지난해 5월 출판 직후 서서히 서점가를 달구어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출간 11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했다. 2008년 11월 출간된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170만부 팔렸던 것과 비교해보면 그 파급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정의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갈망?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누가 움직이는 인문학인가.

인문학이 움직인다?
그나마 인문학이 주도했다는 1980년대에도 100만부 판매 서적은 쉽지 않았다. 소일거리라고는 책 보는 것이 전부이던 그 시절에도 ‘100만부’는 꿈의 숫자였다는 얘기다. 하물며 지금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가 아닌가.
일각에선 ‘정의란 무엇인가’의 성공비결로 “지금 우리가 제대로 못하고 있는 복지국가 논의, 정의에 대한 범국민적 열망이 작용했다”고 풀이했다. 좀더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이는 “인문학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며 정체돼온 인문학 돌파구를 위한 희망을 포석으로 깐다. 어찌됐든 고무적인 일이다. 386을 넘겨 486이 된 한 국문학자는 “2000년대 초반 ‘인문학 위기’를 선언할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제도권 밖 인문학 소통을 위해
이런 추세를 타고 지난 3월 제도권 밖 인문학 소통을 위한 ‘대안연구공동체’가 꾸려졌다. 인문학 강의와 토론 공간이다. 대학교수가 싫다고 학교를 뛰쳐나온 철학자 이정우 박사가 불문학자 이상빈 박사,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성일권 박사, 언론인 출신 김종락 씨와 뭉쳤다.
한국 지성사회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는 어마어마한 문패를 내걸었다. 하지만 발은 현실적인 기반에 뒀다. 철학·문학·어학 등의 강의를 진행하며 대중과 밀착된 현안을 차근차근 짚어보겠다는 거다.
강좌는 동서양철학을 중심으로 하는 ‘파이데이아’와 이탈리아어, 터키어, 라틴어 등 세계언어 강좌인 ‘에콜 에라스무스’로 나뉜다. 이정우 박사가 파이데이아의 학장을, 이상빈 박사가 에콜 에라스무스 원장을 맡았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비롯해 ‘유럽의 사회와 영화’ ‘호모 미그란스(이주하는 인간)의 인문학’ ‘이난아와 함께 떠나는 터키문화여행’ ‘이탈리아 오페라 대본분석 특강’ 등이 6월까지 진행되는 강좌목록에 올라 있다.
‘주류사회가 가는 방향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생각 그대로 ‘대안연구를 위한 공동체’가 단체명이 됐다. 사회는 갈수록 양극화되고 자연은 여전히 착취되고 있으며 사람과의 관계가 쉬운 것도 아니다. 그러니 무엇인가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수강생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나이구분 따윈 없다. 학생부터 회사원, 건축가, 언론인, 출판인까지 강의 프로그램에 포진해 있다.
갈증 해소해줄 대안지식공동체
대안지식공동체라면 빠지지 말아야 할 단체가 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다. 처음에는 한 사람으로 시작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 박사다. 지식에 목말라 박사학위까지 받았지만 취직이 되지 않아 쩔쩔매는 아이러니를 몸소 체득하고 그 틀에서 벗어난 공간을 꾸려보자는 취지였다. 2000년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수유리에서 ‘수유 연구실’을 만들면서 시작됐고, 여기에 이진경·고병권 박사의 공부모임인 ‘연구공간 너머’가 통합돼 ‘수유+너머’란 이름을 얻었다.
공부에 목마른 사람들이 점점 모이면서 집단이 커졌다. 세미나 참석자 100명과 강의 수강생 300명의 규모가 됐다. 붙박이 회원은 70여명에 이른다. 2009년엔 국내 가장 활동적인 대안지식공동체로 명명받기도 했다. 당장 19일부터 시작하는 ‘사주명리학과 앙띠 오이디푸스’를 비롯해 ‘비전탐구 동의보감’ ‘공부란 무엇인가’ ‘인문학과 돈’ ‘왕초보 의역학’ ‘성의 역사’ 등 다양한 커리큘럼이 굴러간다.
한국사회에서 대안지식이란
‘수유+너머’를 세상에 공고히 알린 것은 ‘쥐 그림’이다. 맞다. G20 포스터의 그 쥐다. 그림솜씨를 뽐낸 대학강사 박모(41) 씨는 ‘수유+너머’의 회원이다. 당시 박씨는 “G20 정상회의 개최를 대단하게 포장하여 마치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것처럼 강요하는 그 촌스러움을 풍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내려진 벌금형 200만원이란 채찍은 ‘인문학의 대안적 가치 창출은 역시 요원한 일’임을 복창하란 지시였다.
“인문학 붐이라고?”
야심차게 문을 연 ‘대안연구공동체’의 첫 학기 성적은 초라하다. 인문학이 뜨고 있다고 하는데 16개 강좌에 70여명이 수강했다. 수강료가 만만치 않은 탓(1강좌 15∼30만원)도 있고 ‘장삿속 홍보’가 미비했던 탓도 있다. 그런데 김종락 대표의 생각은 여기서 좀더 나아간다. 인문학이 뜨고 있다는 생각에 온도차가 있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100만부 ‘정의’는 그저 유사 인문학의 붐일 뿐”이라고 진단한다. 아직도 인문학은 위기란 뜻이다. 그는 “인문학은 공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쉽게 삼킬 수 있는 것도 있고 목에 걸려 머물러 있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 인문학에 무조건 하향평준화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되묻는다. 불티나게 판매된 책 한 권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는 것 자체가 빈약한 인문학 기반을 드러낸 방증이란 것이다.
경계 뛰어넘는 인문학 필요하다
지난 세기말을 관통했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경계’다. 한국사회가 그어온 경계는 다양했다. 민족, 이데올로기, 학벌, 성별, 빈부. 그 경계 사이에서 누구는 어느 한쪽에 속하는 테그닉을 일러줬고, 다른 누구는 피해가는 저항을 일러줬다. 그 중간은 속해 있되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처세를 일러줬다.
하지만 그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그릇이 인문학이다. 기둥이고 지표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잠시 코끝만 스친 한국 인문학 바람은 너무 가볍다는 것이 중론이다. 책 한 권으로 감히 가늠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라는 거다.
인간다움이란 뜻을 가진 ‘후마니타스’(humanitas), 기원전부터 다양한 주제를 던져온 그 인문학 본연의 자세로 회귀할 수 있을 때가 과연 우리사회에 도래할 것인가.
euanoh@ieve.kr /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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