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짬뽕’
소시민 시선으로 본 광주
민감 소재 발랄하게 표현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중국집 ‘춘래원’. 짜장면 250원, 짬뽕 300원, 탕수육 1200원을 알리는 메뉴판이 벽에 붙어 있고, 춘장 냄새가 솔솔 피어나온다. 간간이 송창식의 ‘왜 불러’, 남진의 ‘저 푸른 초원위에’가 흘러나오는 지금은 1980년 5월, 장소는 광주다. 17일 저녁 춘래원 식구들은 내일로 다가온 봄 소풍 계획에 한껏 들떠 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웃기지도 않는’ 역사의 소용돌이였다.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날 일에 대한 사소한 기억의 원형에 접근한다. 블랙코미디 연극 ‘짬뽕’이 다시 찾아왔다.
1980년 5월17일 저녁. 짜장 한 그릇, 짬뽕 두 그릇, 탕수육 한 그릇을 철가방에 넣어 들고 배달을 나선 만식은 광주에 포진해 잠복근무 중이던 군인들에게 검문을 받는다. ‘고고장’ 복장의 만식을 두고 시비를 걸던 군인들은 국가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 중이니 짬뽕 두 그릇을 놓고 가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만식은 ‘불응’한다. 서릿발 같은 국가권력에 과감히 항거한 거다. 그리고 외친다. “짬뽕값을 줘야 내줄 수 있다!”
몸싸움을 벌이다 만식이 던진 철가방에 군인은 머리를 다치고 날아든 철가방에 놀란 군인의 총이 발사된다. 가까스로 상황을 모면한 만식은 춘래원 식구들과 TV뉴스에서 당혹스러운 보도를 접한다. 불순분자, 특히 중국집 배달원을 가장한 과격분자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폭동을 일으켰다는 것. 그렇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짬뽕 두 그릇’이 발단이 됐다.
연극 ‘짬뽕’은 자신이 배달하려던 짬뽕 때문에 5·18이 일어났다고 믿는 평범한 소시민의 시선으로 당시의 광주를 바라본 블랙코미디다. 현대사의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풀어가는 방식은 발랄하다. 사실과 교묘하게 오버랩된 기상천외한 상상력이 유쾌한 웃음을 끌어낸다. 하지만 아픔은 아픔이다. 자신의 의사와 아무 상관없이 벌어진 핵폭탄급 사건에 휘둘려 끝내 맥없이 주저앉은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현실이었을지도 모를 장면들이 그때의 상처를 암묵적으로 드러낸다. 한 군데만 보자. 특수요원들이 춘래원을 급습해 사장을 고문한다. 44년 원숭이띠인 그를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라는 이유로 빨갱이로 몰고, 봄이 오는 곳이란 뜻의 춘래원을 접선장소로 단정한다. 주방의 백색 밀가루는 마약으로 둔갑했다. 이 황당한 설정은 춘래원 사장의 꿈 속 장면으로 포장됐다.
2004년 5월 초연했다. ‘기발한 발상’이란 평가를 받은 희곡은 2005년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인문학상을 따냈다. “또 그날이 왔구만요. 요즘만 되면 이 동네는 몽땅 제삿날이요. 짬뽕 같은 놈의 세상.” 서울 신촌 더 스테이지에서 내달 12일까지 공연한다.
euanoh@ieve.kr /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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