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선 서울 익숙한 서울
비명‧트라우마‧일방통행…
왠지 편치않다는 주위의 답변
문학 소재로도 다양하게 등장
[이브닝신문/OSEN=김미경 기자] ○○구 ○○동에 사는 박아무개씨는 백수다. 하지만 서울에서 가장 바쁘다고 생각한다. 낮에 집을 나서 늦은 밤이 돼서야 돌아간다. 도보 이동거리 9.6km, 전차 이동거리로는 5.7km, 총 거리 15.3km다. 14시간 동안 움직였으나 시속 1.1km에 조금 못 미친다. 서울역까지 갔다가 돌아오고 스타벅스 커피전문점을 두 번 들른다. 그는 우두커니 종로 네거리를 바라보고 있는가 하면 아무런 사무도 갖지 않는다.
위 글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라는 소설을 현 시점에서 각색해본 것이다. 과거의 시제를 현재로 엮어 봐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한 줄, 한 사람의 사연이 모여서 엮어내는 도시 서울이 여전히 매혹적인 탐구대상이 되는 이유다. 수많은 너와 내가 만나 탄생되는 서울에 대한 이야기다. 사소한 어떤 순간이 불특정다수에게 전달돼는 후폭풍 같은 곳. 몇 cm의 높이로 팽팽해지는 그런 사이의 서울에 산다. 담론은 제쳐놓고 그저 서울에 관한 수다이다. 우선 주변 지인들, 네이트온·카카오톡·트위터·MSN 메신저를 이용해 100명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서울은?
놀이터부터 오세훈까지
비명, 빵꾸똥꾸, 트라우마, 일방통행이라는 매우 천차만별의 답변이 돌아왔다. 이중 놀이터, 오세훈, 제2의 고향, 롤러코스터라는 답변들은 몇 개씩 겹쳤다. 서울인구 1000만명 중 100명이 쏟아낸 그들만의, 혹은 보통사람들의 서울 얘기다.
우선 지인들의 반응이다. 기자와 닮은 꼴인 주변인 역시 그로테스크한 답변들이 이어졌다. 오체투지, 유리동물원, 오세훈, 긴 터널 등과 같은 꽤 우울(?)한 답변이 많았다.
술에 능하고 서울 지리에 빠삭한 지인 주모(34)씨는 자신의 서울을 ‘놀이터’라고 털어놨다. 쉴 틈 없을 만큼 스릴 넘쳐서 놀이터라고 평가한 스무명의 시민들과 달리 그는 “술 마시며 ‘숏 타임, 롱 타임, 더러는 올 나잇’으로 놀 수 있으니까”라는 말을 설명에 덧붙였다. 밤새 문 연 술집을 찾아 방황하던 그의 과거가 엿보이는 답변이다.
또 한 지인(41)은 오세훈 서울시장을 지목했다. 이유는 “사건이 봇물 터지듯 나오는 서울 관련 소식들에 욕하기 바쁘다”는 얘기가 돌아왔다.
온라인 논객, 트위터리안들의 생각은 좀 더 밝았다. 서울은 곧 ‘추억’이라는 트위터리안도 있었다. 지방으로 이사를 간 후 서울에 대한 추억이 간절해졌다며 내놓은 의견이다. 또 회전목마, 신기루, 믹서기라는 답변에 이어 아이디 smthu2006의 트위터 절친은 “소수자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인권 씨앗을 심는 희망의 땅”이라고도 했다. chundoong은 “서울에서 잘 살라고 아들 이름을 서울 경(京)자에 백성 민(民)으로 지을 것이라는 재밌는 의견을 풀어놓기도 했다.
책에도 다양하게 등장
책에서도 찾아봤다. 생각보다 많았다. 그중 대표적인 작품 몇 가지만 꼽자면 이상의 ‘날개’, 박태환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천변풍경’, 너무 신랄해서 약간은 불편한 고전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이 있었다.
이후로는 장정일의 ‘서울에서 보낸 3주일’, 삼풍백화점을 다룬 정이현의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또 흔하디흔해진 편의점을 소재로 한 김애란의 단편소설 ‘나는 편의점에 간다’가 있다. 세계 곳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쓴 에세이집 ‘스테이’에 소설가 김영하는 ‘단기 기억 상실증’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는 “마치 알츠하이머병 환자처럼 서울은 현재로부터 가까운 기억부터 점차 잃어버리는 질병을 앓고 있거나, 혹은 그런 척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최근엔 서울을 대상으로 한 ‘서울, 밤의 산책자들’이란 소설책도 나왔다. 여기서 서울은 매혹,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면서 곤혹의 결정체도 됐다가 섬뜩하고 느끼한 욕망의 하수구로(이경재 문학평론가의 작품해설 중) 표현된다.
혼자 걸어도 좋고, 커피 한 잔에 수다 떨기 좋은 2011년 서울. 그들이 말하는 서울에 대한 가장 세련된 담론(?)인 셈이다. 도움을 주신 트위터 절친 및 지인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참고도서) 조이담의 ‘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 테마소설집 ‘서울, 밤의 산책자들’, 이호철 장편소설 ‘서울은 만원이다’, 에세이집 ‘스테이’
서울특별시(Seoul)
1960년대 후반 ‘무작정 상경’이라는 용어가 유행했었습니다. 하루 입에 풀칠이 어려운 농촌 처녀총각들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일을 찾는가 하면 유흥가로 빠져드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답니다.
1966년 2~10월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이호철 작가의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에는 당시 서울이 겪은 엄청난 속도의 후유증이 그대로 옮겨 있습니다.
네이버 백과사전을 들여다 보면 서울특별시에 대한 요약이 이렇게 추려져 있군요. ‘한반도 중앙부에 있는 대한민국의 수도. 북쪽 끝은 도봉구 도봉동, 동쪽 끝은 강동구 상일동, 남쪽 끝은 서초구 원지동, 서쪽 끝은 강서구 오곡동이며 시청은 중구 을지로1가(태평로1가 31). 시를 상징하는 꽃은 개나리, 나무는 은행나무, 새는 까치, 캐릭터는 해치’라고 적혀 있습니다.
평생을 살고도 정작 사는 공간에 대해 무심한 탓일까요? 서울과 관련된 생소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밤이면 수천만개의 붉은 가로등이 켜지고 떠나보내기에 바쁜 서울살이. 그런데 이제 다시 시골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죠. 귀농은 또 다른 서울의 이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중에는 ‘무작정 귀농’이라는 신어가 탄생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kmk@ieve.kr /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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