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섭의 스포츠 손자병법]부산, 멀리 내다봐야 한다(상)…돌풍은 불고 있는데
OSEN 최규섭 기자
발행 2011.05.24 11: 02

승부의 세계는 참으로 알 수가 없다. 승패를 내다보기가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객관적 전력만으로 이기고 짐이 가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관전자를 더욱 열광케 한다. 승패를 알고 지켜본다면 그만큼 박진감과 긴장감을 감소시켜 관전의 묘미를 떨어뜨릴 게다.
 
특히 축구는 한결 더 매력을 풍기는 듯하다. 둥근 축구공에서 빚어지는 승패는 좀처럼 예측의 적중을 허락하지 않는다. 군림하는 절대강자의 존재를 부정한다. 오히려 약자의 뒤집기가 자주 나오는 스포츠, 축구다.

 
부산 아이파크가 심상찮다. 꺾일 줄 모르는 기세를 뽐내며 올 시즌 K리그 돌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시즌 개막 전 중하위권으로 분류됐던 모습이 아니다. 4승 4무 3패(승점 16), 6위다. 1위 전북(승점 22·7승 1무 3패)에 견줘도 큰 차가 아니다. 한 달여 전, 한때 15위의 나락에서 허덕이던 흔적을 찾기 힘들다.
 
“선비는 헤어진 지 사흘이 지나면 마땅히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 할 만큼 달라져야 한다(士別三日 卽當刮目相對)”(三國志 吳志 呂蒙傳注)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46일! 부산이 패배를 모른 날수다. 4월 6일, 올 시즌 반전의 계기를 이룬 운명의 날이다. 부산은 이날 컵대회에서 광주를 물리치고(1-0·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 2011시즌 첫 승의 기쁨을 누렸다. 1무 4패, 여섯 걸음 만에 거둔 개가였다.
 
이때부터 부산은 대를 쪼개는 기세(破竹之勢)를 내달렸다. 9승 3무다. 정규리그 4승 3무, 컵대회(B조 1위) 4승, FA컵 1승으로 이뤄진 놀라운 행보다. 이 동안 21골(경기당평균 1.75)을 터뜨리면서 8골(경기당평균 0. 67)만을 내줬다. 공수에서 탄탄한 균형을 엿보였다.
“전쟁을 잘하는 장수는 적을 나오게 하되, 적에게 나아가지 않는다(善戰者 致人而不致於人)”(孫子兵法 第六 虛實篇).
안익수(46) 부산 감독은 올 시즌이 K리그 사령탑 첫 해다. 그런데도 전장에 갓 나온 장수의 느낌이 들지 않는다. 상대의 전력에 맞춘 ‘맞춤전략’은 백전노장의 용병술을 보는 듯싶다. 초반 간난의 고비를 헤치고 나온 위기관리 능력에서 볼 수 있듯 임기응변 솜씨 또한 뛰어나다.
 
이런 ‘안익수 축구’를 제대로 보인 한 판이 있다. 지난 21일 수원 삼성전(수원 월드컵경기장)이다. 안익수 감독이 이끄는 부산이 어떤 축구를 추구하는지 전술적으로 더듬을 수 있었던 의미 있는 경기였다.
 
전술적으로 부산의 완승국(局)이었다. “전쟁은 속이는 방법(兵者詭道也)”이다. 전쟁의 형세는 정공법과 기공법에 불과하지만, 그 변화는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궁무진하다. “기공법과 정공법이 서로 낳음은 순환의 끝이 없는 것과 같다(奇正相生 如循環之無端)”(孫子兵法 第五 兵勢篇)는 말에서 읽을 수 있듯, 누가 절묘하게 더 기공과 정공을 어우러지게 하느냐에 승패가 달렸다.
 
이 맥락에서 부산이 완승보(譜)를 남겼다.  부산은 적을 알고 나를 알았다(知彼知己). 반면 수원은 적을 알지 못하고 나만을 알았다(不知彼而知己). 부산은 변칙과 정칙을 섞어 수원의 눈과 마음을 어지럽혔다. 수원은 어떠했나? 고집스레 정칙만을 운용했다. 부산이 개선가(2-1)를 부른 까닭이다.
 
부산은 공격과 수비에서 전형이 달랐다. 공격시 4-4-2 또는 3-5-2, 수비시 5-4-1의 진법을 90분 내내 흔들림없이 소화했다. 수원은 퇴장으로 숫자가 불리해 질 때까지(후반 31분 황재원, 후반 42분 홍순학) 4-4-2로 일관했다. 승패의 저울추는 이미 기울고 있었다. 
부산은 극단적 수비 진법이었다. 전력의 열세를 인정한, 지피지기의 현명한 전술이었다. 스리백(이정호·김응진·이상홍)과 양 사이드백(박태민<후반 11분 이요한 교체>·김창수)이 한 줄로 나란히 서서 골문을 지켰다. 그 위에 원톱 한 명을 제외한 네 명이 중군에 포진해 수원의 공격을 막았다.
 
그런데 이 9명이 지키는 지역이 굉장히 좁았다. 페널티에어리어(16.50m×40.32m)에 촘촘히 늘어선 5명의 백은 물론, 나머지 4명도 그 가상의 연장선상 안에서만 움직였다. 마치 그 밖으로 나가면 벌칙을 받는 듯, 양쪽 외곽은 포기한 채….
 
수원은 파쇄의 비법을 애써 외면한 듯 보였다. 부산이 쳐 놓은 울타리에 스스로 갇혀 움직였다. 이미 확보된 외곽은 도외시한 채 중앙만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공략은 오로지 패스게임밖에 없다는 듯….
 
자연스레 활동의 폭이 좁아졌고, 우군까지 적군의 장벽을 두텁게 했다. 이런 형국을 불렀으니 어찌 이기기를 바라겠는가. 후반 19분 상대 자책골(김한윤)로 골맛을 봤다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최고의 전략가로 통하는 손자가 설파한 바 있다. “먼저 싸움터에 나아가 적군을 기다리는 자는 편하다(先處戰地 而對敵者佚)”(孫子兵法 第六 虛實篇). 물론 뒤늦게 전장에 나아간 자는 고달플(勞) 도리밖에 없다.
 
축구에는 길목이 있다. 누가 먼저 요로를 차지하고 지키느냐가 승리의 한 관건이다. 부산은 “승부는 골로 말한다”는 말에 충실했다. 골로 이어질 수 있는 요처를 선점하고 편하게 싸웠다.
 
수원은 달랐다. 웬일인지 정공법만으로 골문을 열려고 했다. 상대를 끌어내고 그 빈 틈을 노려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누가 피로도가 더할지 분명했다. 편안한 상태서 피로에 지친 적과 싸운(以逸待勞·三十六計 第四計) 부산이 승전고를 울릴 수밖에 없었다.
 
“적이 힘을 먼저 다 쓰게 된다면 위엄을 세울 수 있다(力罷則威可立也)”(淮南子 兵略訓)고 했다. 이날 결승골(후반 43분 양동현 PK골)이 그랬다. 헛심을 쓴 꼴이 된 수원은 경기 막판 지쳤다.
 
반면 부산은 여전히 펄펄했다. 부산의 역습은 갈수록 빨라졌다. 군더더기 없는 패스가 수원의 골문을 위협했고, 결국 수원을 쓰러뜨렸다. 부산의 스피드한 기습에 놀란 수원은 반칙으로 맥을 끊으려 했고, 그 결과는 페널티킥 허용이었다.
 
“아름다운 축구가 반드시 승리를 부르지는 않는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린 각축전이었다고 할까. 그와 함께 “수비를 잘하는 사람은 적이 그 공격할 곳을 알지 못하게 한다(善守者 敵不知其所攻)”(孫子兵法 第六 虛實篇)는 말을 깨닫게 한 한 판이었다.
                                                                
전 일간스포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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