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호-전병두, 사구 이후 훈훈한 뒷모습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1.05.26 22: 29

자칫 감정 싸움으로 번질 수 있었던 상황. 그러나 기우도 이런 기우가 없었다. 경기 중 이례적으로 상대 덕아웃을 찾아 사과와 격려를 주고받았다. 26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한화와 SK의 시즌 9차전은 승패를 떠나 동업자 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준 의미있는 자리였다.
발단은 3회말 한화 공격에서 터졌다. 2사 후 한화 장성호가 SK 선발 전병두의 4구째 공을 맞이했다. 그런데 전병두가 던진 142km 직구가 장성호의 머리 쪽으로 향했다. 장성호는 피할 새도 없이 그대로 공에 맞았다. 맞는 순간 '퍽'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정통으로 맞았다. 당황한 전병두는 모자를 벗어 사과 의사를 전했지만 이미 장성호는 정신이 없었다. 사구 직후 쓰러져 대주자 오재필로 교체됐다.
그러자 전병두는 급격하게 흔들렸다. 최진행에게 볼넷을 준 뒤 정원석에게 다리 쪽으로 다시 한 번 몸을 맞히고 말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 번 제구가 흔들리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결국 문광은에게 마운드를 넘기고 강판했다. 2⅔이닝 3피안타 1볼넷 2탈삼진 5실점. 이래저래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가득할 법 했다.

하지만 전병두는 예의를 잊지 않았다. 강판된 직후 1루측 한화 덕아웃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기 중인 만큼 덕아웃으로 들어갈 수 없었지만 선수단에 사과의 의미를 전달했다. 그러나 머리를 맞은 장성호가 없었다. 교체된 직후 앰뷸런스를 타고 을지대학교병원으로 후송된 상황이었다. 장성호와는 2005년 7월부터 2008년 5월까지 KIA에서 한솥밥을 먹은 인연이 있었다. 전병두는 마음 한구석의 짐을 갖고 SK 덕아웃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CT 검진 결과 장성호는 골절과 출혈이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공을 맞은 오른쪽 눈두덩이 부어올랐지만 큰 부상은 아니었다. 곧바로 경기장으로 돌아온 장성호는 3루측 SK 덕아웃부터 찾았다. 전병두의 사과 소식을 듣고 경기 중이지만 뒷 통로를 통해 SK 덕아웃을 갔다. 전병두와 SK 선수들에게 괜찮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렇게 자칫 큰 사고가 될 뻔한 이날 사구는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비정한 곳이 프로의 세계라고 하지만 아직 야구계에는 휴머니즘이 살아 있었다. 장성호와 전병두가 그걸 보여줬다.
waw@osen.co.kr
 
<사진> 대전=민경훈 기자 /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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